-
1919년 3월 초부터 4월 하순까지 영암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전개된 항일 운동. 1919년 3월 초 영암군에도 3·1 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 조극환(曺克煥)·최한오(崔漢五) 등 영암읍과 구림리의 뜻있는 이들이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시위를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결국 4월 10일 영암읍 장날에 맞추어 아침 일찍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고 오전 아홉...
-
1960년 4월 19일을 전후로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한 전국에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 운동. 1960년 4월,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발생한 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속되어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키고 제2 공화국을 출범하게 한 혁명이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대한 저항은 선거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마산에서 부정 선거 항...
-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영암군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시민들이 전라남도 광주시를 중심으로 벌인 민주화 운동.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지금의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전라남도 지역의 시민들이 계엄 철폐와 전두환(全斗煥) 퇴진, 김대중(金大中)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 운동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말미암아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한국전쟁, 6·25 사변, 한국동란 등으로도 불리는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하여 1953년 7월 27일까지 남한과 국제 연합군이 북한과 중화 인민 지원군에 맞섰던 전쟁이다. 한반도 내부에서 좌익과 우익, 남한과 북한이 대결하는 내전으로서...
-
1947년 6월 초 영암에서 발생한 국방 경비대와 경찰 간의 무력 충돌. 1947년 6월 1일 영암에서 경찰에 연행된 하사의 신병을 둘러싸고 시비를 벌이다 군과 경찰이 서로 폭행을 벌이게 되었고, 6월 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에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주둔하던 제4 연대 일부 병력이 무장한 채로 영암 경찰서를 공격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는 무력 충돌을 벌였다. 국군의 모태가 되는 국...
-
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작하여 영암군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대규모 학생 반일 운동.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 열차 안에서 한국인 통학생과 일본인 통학생 간의 충돌을 계기로 대규모 항일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신간회와 청년 학생 운동 세력은 진상 규명과 함께 항일 투쟁의 확대를 시도하여 3·1 운동 이래 최대의 항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2...
-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생활 조건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해 행하는 조직적인 운동. 근대적인 노동자 계급은 형성의 초기 단계부터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 운동을 발전시켜 왔다. 1898년 개항 직후 목포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1920년대 이후 공장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노동 운동이 시작되었다...
-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농민들이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식적,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사회 운동. 직접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지배 계급이나 국가에 대한 저항을 벌이는 일은 고대부터 자주 있었지만, 농민 스스로 자신의 독자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싸우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였다.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적 수탈로부터 벗어나기...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지방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반대한 개인과 단체의 저항 운동. 전통적으로 영암은 전라도 지역 교통의 요지이며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그만큼 일본 제국주의 자본의 주요한 침투 대상으로, 강한 경제적 침략의 위협 아래 놓여 있었다. 여기에다 일찍부터 사족의 문화가 발달하고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활동이 활발한 고장이었던 만큼 항일 운동의 전통도 뿌리...
-
1894년 전라남도 영암군 일대에서 전봉준 등 동학 지도자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반제 반봉건 농민 운동. 동학 농민 운동은 1894년(고종 31) 1월 발생한 고부 민란 이후 전봉준 등이 3월 무장현에서 본격적으로 민중의 호응을 촉구하며 봉기를 일으킴으로써 시작되었다. 그해가 60갑자 중 갑오년이었기에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농민군은 관군을 연달아 격파하며 전주성까지 점령...
-
1946년 10월 미군정의 쌀 강제 공출 정책에 맞서서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 1946년 경제 정책 실패로 쌀 가격이 폭등하자 미군정은 농민들에게서 쌀을 강제로 수집했고, 조선 공산당 등 좌익은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자 총파업과 공출 거부 투쟁을 시도하였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1946년 9월과 10월에 대규모 폭동과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해방...
-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사회적인 변화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거나 저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집단적 행동. 사회 운동은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하여 대중이 자발적으로 하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이며 지속적인 행위이다. 정당이나 이익 단체의 활동보다는 덜 체계적이지만 군중 행동보다는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기든스(Giddens)에 의하면...
-
1927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 사회주의자들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연계하여 결성한 사회 운동 단체. 신간회는 1927년 2월 공개적 정치 활동과 좌우익 협동 전선의 필요에 공감한 사회주의자들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연계하여 결성하였다. 이후 각 지방마다 신간회 지회가 설립되었다. 신간회 영암 지회는 1927년 8월 결성되어 각 지역마다 분회를 두고 지역 상황에 맞는 활동을 전개...
-
1932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일어난 시위 사건. 영암의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모여 지주의 소작권 이동을 거부하고 지주의 횡포와 일제의 지배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1932년 영암 공산주의자 협의회는 당시 농민 문제의 핵심이었던 소작권의 잦은 이동을 막고 농민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지지자들을 확대하려 하였다. 이들은 1932년 6월 4일 영보정(永保亭)에 모여...
-
1945년 9월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치안과 행정 활동을 위해 조직되었던 민간 자치 기구. 1945년 8월 광복 직후 좌우익이 함께 참여했던 건국 준비 위원회에서 우익이 탈퇴하면서 여운형, 박헌영 등 좌익은 건국 준비 위원회를 대체하기 위해 1945년 9월 6일 ‘조선 인민 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각지의 건국 준비 위원회 지회들은 지역별 인민 위원회로 전환하였는...
-
1920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 청년들이 설립한 사회 운동 단체. 영암 청년회는 1920년 7월 김자명(金子明), 한동석(韓銅錫)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계몽 활동과 민립 대학 설립 등 민족주의 운동 단체로서 활동하였으나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적 단체로 전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1920년 7월 21일 영암 열무정에서 영암 청년회가 창립 총회를 열고...
-
1930년대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농민의 계급 의식 고취와 사회주의 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조직하고자 한 혁명적 농민 조합 운동. 1928년 12월 코민테른 집행 위원회 정치 서기국은 「조선 공산당 재조직에 관한 결정서」, 곧 12월 테제를 채택하였다. 이 12월 테제의 주된 내용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조직하려던 이전 방법을 버리고 공장·농촌으로 파고들어 가 노동자와...
-
1933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운동 협의체. 혁명적 농민 조합을 결성하여 계급 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전위 정치 조직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 사회주의자들의 협의체이다. 1933년 5월, 해남과 완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활동가인 김홍배와 황동윤이 각자 자기 지역에서 활동하다 농민 운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 운동을 지도할 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전남 운동 협...
-
1945년 해방 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조직된 치안과 행정 활동을 위한 임시 행정 기구. 여운형은 일제의 패망을 대비한 비밀 조직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으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자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치안 유지와 건국 준비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전국의 도, 시, 군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급속히 결성되었으며,...
-
일제 강점기에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청년들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한 관제 단체. 일본 제국주의는 청년단을 조직하여 젊은이들이 민족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차단하고 제국주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청년들을 동원하고자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본격화되자 일제는 청년단에 모든 청년이 가입하도록 하고 청년 훈련소를 확대한 청년 연성소를 개설하여 예비 군인으로 훈련하고자...
-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해방과 남북한의 분단, 6·25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 역사 시대를 말한다. 영암은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의 상처를 크게 입었으며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의 쇠퇴와 농촌 인구의 감소, 노령화 등 위기를 겪었으나 새로운 산업의 개발과 풍부한 역사적 전통, 수려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