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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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進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김상기 |
설립 시기/일시 | 1929년 04월 23일 - 월진회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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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30년 3월 - 월진회 해체 |
최초 설립지 | 월진회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
성격 | 사회운동단체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윤봉길 의사가 설립한 사회운동 단체.
[개설]
윤봉길은 1929년 4월 23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고 회장에 추대되었다. 월진회란 명칭은 날로 나아가고 달마다 전진하자는 의미이다. 사무소는 시량리에 건립한 부흥원에 두었다
[설립 목적]
월진회는 문맹 퇴치와 농촌 부흥, 그리고 애국 사상 고취 등을 활동 목표로 삼았다.
[변천]
1929년 4월 23일[음력 3월 14일]에 조직되었으나 1930년 3월에 해체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문맹 퇴치, 농촌 부흥, 그리고 애국 사상 고취 등이 월진회의 활동 목표였다. 윤봉길은 ‘월진회 취지서’, ‘월진회 금언(金言)’을 지어 회원들에게 외우게 하였다. 흰색 바탕에 세 줄의 청색, 그리고 가운데에 무궁화꽃을 넣어 월진회의 기를 제작하였다. 흰색은 백의민족, 세 줄의 청색은 삼천리 금수강산, 무궁화는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뜻을 담았다. 월진회 회칙에 의하면 매월 14일 저녁 7시에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강연을 행하고 회에서 집행할 일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이사는 정종갑(鄭鍾甲)과 정종호(鄭鍾浩), 고문은 윤순의(尹舜儀), 김홍기(金弘基), 간사는 이태경(李泰敬)이었다. 회원은 40여 명에 달했다.
월진회는 저축 증대 사업을 전개하였다. 월진회 통장 오른쪽에는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고,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된다’는 뜻의 ‘진합태산 수적성해(塵合泰山 水滴成海)’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회원은 매월 10전씩 저금을 해야 했다. 만일 매월 납부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동안의 저축액을 무효로 한다고 하였다. 또 저축은 본인이 해야 하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자식이나 조카가 대리 납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타인에게 납부하게 하면 처벌한다고 되어 있다. 납부한 회비는 고덕금융조합 삽교출장소에 저금하였다.
월진회의 주요 사업은 농촌 부흥 운동이었다. 이를 위하여 목계농민회에서 실시하던 농가 부업 장려와 공동판매 등의 사업을 계속하였다. 회원들에게 어린 돼지 한 마리씩을 나눠주어 기르게 하였다. 양계에도 힘을 써 소득을 올리게 하였다. 윤봉길은 월진회를 통하여 농촌을 잘 사는 마을로 부흥시키고자 하였다. 월진회는 1930년 3월 윤봉길이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활동이 끊어졌으나, 1944년 2월 윤일의(尹佾儀) 등이 우진회(愚進會)를 설립하였으며, 1946년 이를 월진회로 바꿔 윤봉길의 월진회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의의와 평가]
월진회는 일제강점기 농촌 부흥과 애국 사상 고취를 목적으로 설립한 민간단체였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공동체적 삶을 지향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