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항일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81
한자 大興 公立普通學校學生抗日運動
영어공식명칭 Daeheung Public School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이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0년 03월 07일연표보기 -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항일운동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30월 3월 8일연표보기 -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항일운동 종결
성격 항일학생운동
관련 인물/단체 강창희|김만복|조병언|강경희

[정의]

1930년 3월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대흥공립보통학교에서 전개된 학생들의 항일운동.

[개설]

1930년 3월 강찬희(姜讚熙)·김만복(金萬福)·조병언(趙昺彦)·강경희(姜敬熙)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시험에 백지답안을 제출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역사적 배경]

강찬희·김만복·조병언·강경희 등은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을 계기로 대흥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추진했다.

[경과]

강찬희·김만복·조병언·강경희 등은 1930년 1월과 2월 사이 대흥공립보통학교 6학년 학생인 윤소현(尹召鉉)·김창환(金昌煥)·배덕근(裵德根)·강성희(姜星熙)·신이균(申利均) 등에게 광주학생운동에 대해서 설명하고 일제가 조선인 학생만을 체포, 구속하는 차별로 조선인 학생을 탄압하고 있음을 알리고 “각지의 조선인 학생들이 동맹휴교와 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어찌 대흥보통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느냐?” 하며 대흥공립보통학교에서도 학생운동을 추진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대흥공립보통학교에서는 1930년 3월 7일~8일에 실시된 시험에서 학생들이 백지답안을 제출하였고, 윤소현과 김창환 등 20여 명의 학생들은 동서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일제는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는 명목으로 손지리 야학강사이자 『중앙일보』 지국 기자였던 강찬희와 김만복, 입침리 계몽학원 강사 조병언과 교촌리 강경희를 구속하였다. 강찬희·김만복·조병언·강경희는 1930년 7월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면소되었으나 검사의 항고에 의해 1930년 11월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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