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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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村振興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문경호 |
[정의]
1930년대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있었던 농촌 지도 단체.
[설립 목적]
일제는 농촌진흥회 설립과 관련하여 농촌의 자력갱생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실제로는 농가의 침식·기거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생산 소비 등 모든 방면을 간섭하면서, 농민을 세밀하게 통제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각 마을의 농촌진흥회가 추진한 주요 사업 내용은 색깔 있는 옷 입기 장려, 관혼상제 비용 절약, 마을 청결 유지, 납세 기준일 준수, 문맹자 교육, 단발 권장 등이었다. 1937년 11월 11일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예산군 예산면 예산리, 향천리, 대회리, 주교리, 산성리, 발연리, 창소리, 궁평리, 간양리 등 각리의 농촌진흥회 남녀 회원이 9월 23일 농산어민보국일에 작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응소군인위문금으로 면사무소에 납입하기도 하였다.
[현황]
1916년 처음 농촌진흥회가 조직된 이래 1930년 5월 예산군 12면 175리에 189개소의 진흥회가 조직되었다. 각 진흥회는 일제의 집중적인 간섭을 받고 있었다. 군 지정 진흥회와 면 지정 진흥회와 같은 지정 진흥회가 각각 선정되었으며, 지정 진흥회는 국고보조금이 집행되어 경제적인 이익이 있었으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군면에서 파견된 직원들에 의해 가호 단위로 집중 지도 및 감독을 받았다. 예산의 대표적인 지정 진흥회는 군 지정 진흥회로 광시면 장전리진흥회, 면 지정 진흥회로 광시면의 용두리진흥회, 예산면의 관작리진흥회와 수교리진흥회, 삽교면의 역리진흥회와 두리진흥회 등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는 농촌진흥회를 통해 농촌진흥운동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농촌 사회를 지배하였다. 농촌진흥회는 전시 동원 체제 아래 전쟁 물자와 노동력을 동원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