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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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坪里-彌勒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2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류용환 |
제작 시기/일시 | 고려시대 - 신평리 돌미륵 제작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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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신평리 돌미륵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2리 |
성격 | 미륵불 |
재질 | 돌 |
크기(높이) | 270㎝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 있는 고려시대 돌미륵.
[개설]
신평리 돌미륵은 예산군 덕산면 신평2리에 있으며,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덕산면사무소에서 남서쪽으로 800여m 정도 들어가면 가야관광호텔의 맞은편 도로 서쪽에 인접한 식당 앞에 신평리 돌미륵이 있다.
[형태]
전체 높이 270㎝ 정도로 동쪽을 향하여 서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이루어져 있지 않은데, 상단부에는 4각의 보개를 쓰고 있으며 석불입상은 1매의 석재로 만들어져 있다. 머리에는 조각된 보관을 쓰고 있으나 마모되어 문양은 확인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크기에 비해 상호(相好)[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가 매우 크다. 이마에는 백호(白毫)[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양각되어 있으며 눈은 반쯤 뜨고 있다. 코는 비교적 거칠게 표현되고 있으며 입은 얇은 입술을 ‘-’자로 꼭 다물고 있다. 의습은 통견(通絹)이나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해 정확하지는 않고 굵은 선으로 간략하게 의문을 처리하였다.
왼손은 가슴께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잡은 중품을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을 펴서 가볍게 내려 배 부분에 대고 있다. 미륵불의 뒷면에는 아무런 조각도 되어 있지 않고 옆면도 일부 파손되어 있다. 현재 시멘트 기단에 하부가 매몰되어 있어 정확한 크기나 미륵불의 하부 조각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특징]
마을 사람들은 정월보름이 되면 돌미륵에 치성을 드리거나 소원을 빌었다. 특히 출산을 하지 못하는 여자가 미륵의 각 위에 돌을 던져 놓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고 하며 주민 중에는 개인적으로 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고려 전기 충청도 지방에서는 돌을 대충 다듬은 다음 간략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유행하였다고 하며 신평리 돌미륵도 이와 관련하여 고려시대 미륵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