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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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觀音里-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성부제 |
소재지 | 관음리 절터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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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절터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터.
[개설]
관음리 절터는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관음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이다.
[위치]
예산군 광시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지방도619호선을 따라 4㎞ 정도 가면 관음리 관음동마을이 나온다. 관음동마을 마을회관에서 북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0.5㎞ 들어가면 마을의 서쪽으로 내상산 올라가는 폭포수골이 나온다. 길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가면 동쪽으로 관음리 절터가 있다.
[현황]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큰 관음리 절터와 작은 관음리 절터가 있었다고 한다. 큰 관음리 절터는 현재 개간되어 농장으로 경영되고 있는 400여 평[약 1,322㎡]의 밭에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두 단에 걸쳐 축대열이 남아 있다. 개간으로 인해 축대가 많이 붕괴되기는 하였으나 각각 6m 떨어져 10m 정도 석렬이 남아 있다. 축대를 통해 사찰은 여러 단에 걸쳐 정동향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은 관음리 절터는 축사 조성 때 이미 파괴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축사 축대로 이용된 축대가 원산지 축대 석재를 이용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절터로 추정되는 곳 앞쪽으로는 작은 우물이 남아 있다. 절터 내 곳곳에 사찰을 지을 때 사용하였던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청해파상문의 기벽이 두껍고 질흙이 거친 기와편과 굽이 높고 투박한 대접류의 백자편들이 수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