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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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石文 |
영어공식명칭 | Epigraph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제연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의 쇠붙이나 돌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개설]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금석문 기록은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즉,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물·유적과 유물의 연대 및 건립 경위와 주체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관찬(官撰)이나 중앙 중심 문헌 자료의 한계를 보완하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묘와 신도비]
금석문으로 분류되는 것 중 가장 많은 것이 돌에 새긴 비석류이다. 비석은 직사각형 모양의 비(碑)와 상단부의 사각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갈(碣)로 나누기도 하지만, 그 구분이 엄격하지 않아 통용되고 있다. 비갈 중에서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생애 등을 기록한 묘비와 신도비가 가장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묘비(墓碑)는 조상에 대한 효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규제가 있었음에도 화려한 양식으로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양반 사족 가문의 묘역에서 많은 묘비가 확인된다. 묘비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전면에 이름을 쓰고, 삼면에 죽은 이의 행적을 적은 후 마지막에 글을 지은이와 쓴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예산에서 발견된 묘비문으로는 1723년 봉산면 봉림리에 건립된 이제배(李悌培) 묘비가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관직 정2품 이상을 지낸 인물 중에서 뚜렷한 공업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물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예산에서는 김구 신도비[신암면 종경리, 1640년 건립], 이의배 신도비[봉산면 봉림리, 1644년 건립], 이만 신도비[응봉면 평촌리, 1752년 건립], 이산해 신도비[대술면 방산리, 1819년 건립], 흥선대원군 아버지인 남연군 신도비[덕산면 상가리, 1865년 건립], 조익 신도비[신양면 신양리 1876년 건립], 조극선 신도비[봉산면 시동리 1929년 건립], 손응시 신도비[신양면 차동리, 1988년 건립], 이희손 신도비[응봉면 평촌리, 1979년 건립] 등이 있다.
묘비와 신도비 등은 죽은 자의 긍정적인 면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알려지지 않은 개인의 일대기를 파악하는 데에 좋은 자료이다.
[기념비]
역사적 사건이나 개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도 흔히 볼 수 있다.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예산 대흥 척화비(禮山大興斥和碑)’는 서양세력이 몰려오자 흥선대원군이 외세에 대해 쇄국정책을 하는 굳은 의지로 1871년(고종 9)에 세운 것이다.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에 있는 ‘덕잠서원 유허비(德岑書院 遺墟碑)’는 예산군의 유일한 사액서원인 덕잠서원 이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자, 1942년에 제향인물 김구의 후손들이 세운 유허비이다.
또한 예산을 거쳐 간 수많은 관료들의 선정비도 다량으로 발견된다. 예산군 곳곳에 세워져 있던 선정비들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한곳에 모아 두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읍 산성리에 19기, 덕산면 신평리에 17기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으며, 몇 기의 선정비는 예산군 내에 흩어져 있다.
선정비는 형태가 다양하며, 전면에 관직과 이름을 새기고, 그 좌우에 기념할 만한 내용을 기록하거나 비석의 삼면을 활용해 글을 음각하기도 한다. 선정비가 세워진 관리들이 모두 선정을 베풀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선정비는 역사 자료로 한계가 드러나는 유적이다.
충·효·열의 삼강(三綱)을 실현한 인물들의 금석문도 기념비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충·효·열의 행적으로 국가적 포상이 내려진 경우는 인물의 행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눈에 띄는 장소에 세워 집안의 자랑으로 내보이기도 하였다.
예산군 내에 있는 충·효·열 금석문으로는 고려 말 효자 ‘예산 이성만 형제 효제비’[대흥면 동서리, 1497년 건립,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지정], 전근금 효자비[광시면 미곡리, 영조 대 건립],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신양면 귀곡리, 1811년 건립], 신창표씨 열녀비[응봉면 계정리, 1919년 이전 건립], 이흥갑 효자비[신양면 차동리, 건립 미상] 등이 있다.
[기타 금석문]
예산군에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매향비(埋香碑)가 있어 주목된다. 매향비는 고려 말 미륵불 신앙을 바탕으로 향을 오랫동안 땅에 묻어 침향을 만드는 매향과 함께 소원을 적은 비를 함께 묻어, 내세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염원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바로 봉산면 효교리에 고려 말 조선 초 매향비인 ‘예산 효교리 매향비(禮山孝橋里埋香碑)’가 있다.
또한 조선 최고의 서예가로 알려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친필 각서(刻書)가 예산에 남아 전한다. 이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문은 신암면 용궁리 화암사 안의 자연암반에 새겨져 있는데,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체로 추사체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