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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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姜氏楊州趙氏烈女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텃골길 6[귀곡리 796-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진주강씨와 양주조씨의 열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비.
[개설]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는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으며, 성국진(成國鎭)의 처 양주조씨(楊州趙氏)와 성응기(成膺基)의 처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열행을 기리고자 1811년[순조 11] 세운 열녀비 2기이다.
[건립 경위]
양주조씨는 성국진의 세 번째 아내로, 남편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가르치고 키우기를 자기가 낳은 자식과 다름없이 하였다. 이후 남편이 병에 걸려 위독하자 자신이 대신 죽게 해 달라고 빌며 극진히 간호하였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병으로 죽자 장례를 마친 뒤 따라서 자결하였다. 진주강씨는 양주조씨의 5세 손부로 성응기의 부인이다. 성응기가 죽었을 때 강씨가 시름시름하며 자결할 기미가 보이자 집안사람들이 걱정하며 살폈으나, 어느새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양주조씨와 진주강씨의 열행은 지역에 널리 알려졌으나 양주조씨만 관찰사까지 상신(上申)되었다고 한다. 『일성록』 1789년[정조13] 기사에 의하면 예조가 서울과 지방의 효열 별단(孝烈別單)을 올렸는데, 그때 대흥(大興)의 선비 성국진의 처 조씨의 열행도 알려졌다. 『순조실록』 1804년 12월 기사를 보면 “성국진의 처 조씨가 정절을 지켰으니 정려를 청한다[成國鎭妻趙氏烈行, 請竝旌閭].”라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명정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1811년[순조 11] 11월 16일 2기의 열녀비가 세워졌다.
[위치]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국도32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2㎞ 거리에 불원교가 있다.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는 불원교를 건너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1.2㎞ 정도 떨어진 곳의 낮은 구릉 하단부에 남쪽을 보고 서 있다.
[형태]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는 모두 아래가 사각형이고, 위쪽은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양주조씨의 비석은 높이 82㎝, 폭 33㎝, 두께 10㎝이고, 진주강씨의 비석은 높이 83㎝, 폭 32.5㎝, 두께 9.5㎝이다.
[금석문]
양주조씨의 비석 앞면에는 ‘정렬부인 양주조씨 불망비(貞烈夫人楊州趙氏不忘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신미[1811] 십일월십육일 립(辛未十一月 十六日 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진주강씨의 비석에는 앞면에는 ‘정렬부인 진주강씨 불망비(貞烈夫人晉州姜氏不忘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신미[1811] 십일월십육일 립(辛未十一月 十六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는 높은 시멘트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보호 철책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