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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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弘祚妻丹陽禹氏旌閭 |
이칭/별칭 | 열부 단양우씨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궁평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743년 - 한홍조 처 단양우씨 명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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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한홍조 처 단양우씨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궁평리 |
성격 | 정려 |
양식 | 굴도리식|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궁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열부 단양우씨의 정려.
[개설]
한홍조 처 단양우씨 정려는 봉계 한홍조(韓弘祚)[1682~1712] 처 단양우씨의 행적을 기려 1743년(영조 19)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단양우씨(丹陽禹氏)는 우석규(禹錫圭)의 딸로 한홍조와 혼인하였다. 한홍조는 자가 영숙(永叔)이고, 호는 연재(捐齋)이다. 단양우씨는 남편 한홍조가 죽자 집 뒤에 있는 봉두암 절벽에서 뛰어 내려 자결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다리와 얼굴만 다치고 죽지 못하자 식음을 전폐하여 숨을 거두었다.
[위치]
예산군 봉산면 봉산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들어가면 궁평리가 나온다. 한홍조 처 단양우씨 정려는 금치교를 건너기 전에 궁평리 서남쪽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비교적 완만한 구릉에 개간된 밭 사이에 있다.
[변천]
한홍조 처 단양우씨 정려는 예조에서 작성한 『효행등제등록(孝行等第謄錄)』[1739~1741] 정려질에 ‘예산고사인 한홍조 처 우씨(禮山故士人韓弘祚妻禹氏)’라고 하여 명정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예산 인물조에 ‘우씨 정문 재암하리 한홍조처야(禹氏旌門在巖下里韓弘祚妻也)’라고 기록되어 있어 한홍조 처 단양우씨 정려는 본래 암하리[현 예산읍 암하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한홍조의 6대손인 한석호(韓奭嘷)가 봉산면 궁평리로 옮겼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형태]
한홍조 처 단양우씨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에 굴도리식의 가구 양식을 한 건물이다.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는 상협하광의 팔각높은기둥 주춧돌과 원기둥을 올리고 있다. 정려의 4면에는 홍살을 두르고 있으며 건물의 양옆 박공 아래에는 방풍판을 설치해 놓았다. 정려 내부 중앙 상단에는 1743년 내려진 ‘열부 처사 한홍조 처 유인 단양우씨지문 명정(烈夫處士韓弘祚妻孺人丹陽禹氏之門 命旌)’이라고 쓴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단양우씨의 남편 한홍조는 수암 권상하의 제자로 당시 권상하와 제자들간의 문답을 기록한 『강상문답(江上問答)』을 남기는 등 학문적으로 뛰어난 학자였다. 따라서 단양우씨의 명정 과정에는 한홍조와 관련된 학맥과 유림들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