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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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禹榮旌閭 |
이칭/별칭 | 효자 이우영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산43-4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905년 - 이우영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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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2007년 - 이우영 정려 지곡리에서 상장리로 이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6년 8월 - 이우영 정려 중수 및 개수 |
현 소재지 | 이우영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산43-4 |
원소재지 | 이우영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장사리 197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 있는 효자 이우영의 정려.
[개설]
이우영 정려는 효자 이우영(李禹營)의 효행을 담은 정려로 1905년 건립되었다.
이우영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선량(善良), 호는 밀암(密庵)이다. 이우영은 충청 5현 가운데 한 명인 초려 이유태(李惟泰)의 후손으로 경주이씨 집성촌인 상장리에서 태어나 살았다. 이우영은 아버지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다른 일화로는 동학농민군이 상장리까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이우영이 음식을 장만하여 후하게 대접하는 등 슬기롭게 대처하였다고 한다. 동학농민군들은 크게 감동하여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 부모에 대한 효성과 동학농민군에게 슬기롭게 대처한 일은 여러 고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전한다.
[위치]
이우영 정려는 예산군 고덕면 장사리 197번지에 있었으나 2007년 이건하여 현재는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산43-4에 있다.
[변천]
이우영은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888년[고종 25] 9월 가선대부를 증직받고, 호군을 제수받았다. 또한 1901년(광무 5) 6월 안릉참봉이 되었으며, 8월 중추원의관이 되었다. 1905년 3월 1일 비서원승에 증직되고, 명정을 받아 정려가 세워졌다. 2006년 8월 중수 및 개수하였으며 2007년 상장리로 이전하였다.
[형태]
이우영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다. 정려의 4면에는 홍살을 둘렀고 양옆에는 박공 아래 방풍판을 설치해 놓았다. 정려의 내부 중앙 상단에는 1905년 받은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하단에는 1929년 전우가 짓고, 황기연이 쓴 정려기가 걸려 있다. 1905년 내려진 현판에는 ‘효자 증통정대부비서원승 행통훈대부 중추원의관 경주이우영지려 대한광무9년 3월 1일 명정(孝子贈通政大夫秘書院丞行通訓大夫中樞院議官慶州李禹榮之閭 大韓光武九年 三月 一日 命旌)’이라고 쓰여 있다. 명정 현판과 정려기 뒷면에 전용국이 한글로 번역한 내용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우영 정려는 1905년 개항기에 건립되었으나 벼슬이 계속 증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20세기 초 효자 정려 정책을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