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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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鶴秀旌閭 |
이칭/별칭 | 효자 정학수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870년 - 정학수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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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71년 - 정학수 동몽교관에 추증 |
현 소재지 | 정학수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정학수의 정려.
[개설]
정학수 정려는 정학수(鄭鶴秀)[1802~187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70년(고종 7) 세워진 정려이다.
정학수의 본관은 온양, 자는 춘백(春伯)이고, 아버지는 정동조(鄭東祚), 어머니는 김녕김씨이다. 효성이 지극하였던 정학수는 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깨물어 입에 피를 넣어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7일을 더 살고 죽자 3년간 시묘를 살았다고 한다. 정학수의 효행이 충청도관찰사를 통해 보고되어 1870년 효자 명정을 받았다. 1871년 정학수의 효행이 특별하다고 하여 동몽교관에 추증하였다는 내용이 『승정원일기』에 적혀 있다.
정학수의 아들 정면교(鄭勉敎) 역시 효자로 이름났다고 한다.
[위치]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국도32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2㎞ 정도 가면 예산성당 시왕공소가 있다. 공소 옆길을 따라 4㎞ 정도 들어가면 시왕리 중불운리마을 입구에 정학수 정려가 있다. 중불운리마을은 온양정씨 세거지로 문중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형태]
정학수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로 낮은 시멘트 기단 위에 팔각의 높은기둥 주춧돌을 놓고 원기둥를 올려놓았다.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며, 양쪽 측면에는 방풍판을 설치해 놓았다. 뒷면만 시멘트로 벽을 하고, 나머지 3면은 홍살이다. 정려 내부 중앙 상단에는 1870년 7월 내려진 ‘효자 증조봉대부 동몽교관 정학수지려(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鄭鶴秀之閭)’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뒷벽에 두 개의 정려기가 걸려 있는데 왼쪽 정려기는 글씨가 흐릿하여 판독이 어렵다. 오른쪽 정려기는 상태가 좋으며 ‘숭정기원후 오신미년(崇禎紀元後五辛未年)’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명정이 내려진 1년 뒤인 1871년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현황]
정학수 정려 뒤에는 추모사(追慕祠)가 있으며, 추모사 앞에는 1998년 세운 추모사건립기념비가 있다. 정려 뒤쪽 산 북쪽 경사면에 온양정씨 집안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