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25
한자 韓楯旌閭
이칭/별칭 충신 한순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천2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65년연표보기 - 한순 정려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666년 - 한순 정려 중수 및 개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770년 - 한순 정려 중수 및 개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0년 - 한순 정려 중수 및 개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7년 - 한순 정려 중수 및 개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8년 - 한순 정려 중수 및 개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7년 - 한순 정려 중수 및 개수
현 소재지 한순 정려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천2리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천2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충신 한순의 정려.

[개설]

한순 정려는 효종 대 재상 김육과 김육의 손자 김석주의 건의로 건립되었다. 건립 과정에 관련된 기록들이 김육과 김석주의 책에 각각 남아 있다.

한순(韓楯)[1555~1592]은 본관이 청주이고, 자는 사한(士閑)이며 충훈부도사 한극심의 아들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평양판관 등을 거쳐 1590년(선조 23) 남평현감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월 윤열(尹悅) 및 창평현감과 합세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용담과 금산의 경계인 송현 밑으로 진군하였다. 진을 치고 적과 맞서다 8월 9일 순국하였다. 효종 때 병조참의로 추증되었다가 1713년(숙종 39)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증직되고, 서성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의장(毅壯)이다.

[위치]

한순 정려예산군 고덕면 대천2리 마을 입구에 있는 낮은 야산의 남서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변천]

한순이 순직한 뒤 바로 표창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따르면 순찰사가 조정에 상소를 올렸으나, 상소를 가지고 가던 사람이 중도에서 적군을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조정에서 오랫동안 포상하지 않다가 효종 대 와서 비로소 병조참의로 추증되었다고 한다. 포상은 손자인 한흡(韓㬁)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1656년(효종 7) 덕산에 살던 야곡 조극선에게 할아버지의 표창에 힘써 줄 것으로 요청하였고 조극선은 김육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육은 곧바로 조정에 한순의 순절을 포상할 것을 건의하였고 조정이 승인하였다. 『야곡집(冶谷集)』과 『잠곡유고(潛谷遺稿)』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한흡은 더 나아가 김육의 손자인 김석주에게 할아버지의 정려와 관련해 상소를 대신 올려 달라고 요청하였고 1713년(숙종 39) 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증직되고, 서성군에 봉해졌다. 『식암선생유고』에 기록이 남아 있다. 한순 정려는 건립 이후 몇 차례의 중수와 개수가 이루어졌는데 명정 현판 기록에 따르면 1666년(현종 7), 1770년(영조 46), 1810년(순조 10), 1857년(철종 8) 각각 중수되었다. 이후 1978년과 1987년 11대손 한충석이 주도하여 각각 개수와 기와를 중수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형태]

한순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려의 4면에는 홍살을 두르고 있으며 양옆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내부에는 명정 현판이 걸려 있는데 앞면에는 1665년(현종 6) 내려진 ‘충신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겸지의금부사 서성군 시충민공 행통훈대부 남평현감 나주진관 병마절제도위 한순지문 숭정후병오삼월 중수 숭정기원후오경인십월십팔일 중수 숭정기원후육경오오월육일 중수(忠臣贈資憲大夫 兵曺判書兼知義禁府事西城君諡忠愍公行通訓大夫南平縣監羅州鎭管兵馬節制都尉韓楯之門崇禎後丙午三月 重修 崇禎紀元後五庚寅十月十八日 重修 崇禎紀元後六庚午五月六日 重修)’, 뒷면에는 ‘숭정기원후칠정사십이월초구 중수 서기일구칠팔년사월십육일 개수 충석 서기 일구팔칠년삼월□칠일 개와중수 충석(崇禎紀元後七丁巳十二月初九 重修 西紀一九七八年四月十六日 改修 忠錫 西紀 一九八七年三月□七日 蓋瓦重修 忠錫)’이라고 적혀 있다. 명정 현판 상단에는 ‘남평선생안(南平先生案)’과 ‘금산군사적(錦山郡事蹟)’ 등 한순의 행적과 관련된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정려 주변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정려 앞에는 11대손 한충석, 10대손 한환교, 방계 후손 상갑이 1988년 세운 행장비가 있다. 비신의 앞면에는 ‘임진순절청주한공휘순시의장공지행장비(壬辰殉節淸州韓公諱楯諡毅壯公之行狀碑)’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한순 정려한순의 행적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손자인 한흡이 명정을 위해서 노력한 과정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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