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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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着姓氏 |
영어공식명칭 | An Indigenous Clan |
이칭/별칭 | 토성(土姓)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수연 |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 집단의 성씨.
[개설]
예산군의 토착 성씨는 조선 초에 편찬된 지리지의 성씨 조에 기록된 성씨로 볼 수 있다. 1432년(세종 14)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1481년(성종 12) 편찬하고 1530년(중종 25) 증보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성씨 조에 예산현·대흥현·덕산현 3개 군현의 토성, 망성, 속성, 부곡성 등이 등재되어 있다.
[예산현의 토착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토성으로 기록되어 예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심(沈)·장(張)·신(申)·손(孫)이 있고, 화물장(化物莊)과 문석소(文石所)의 망성(亡姓)인 방(方)씨가 있었다. 화물장 문석소는 예산현의 특수 구역이었는데, 조선 초기에는 망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망성은 토착하여 살다 없어진 성씨이다. 그리고 문석소의 속성(續姓)으로 심(沈)씨가 있어 조선 초에 어떤 사회적 변화로 인해 문석소의 성씨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씨 조는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예산의 토성이 신·손·심·장으로 등재 순서가 바뀌었고, 속성으로 심씨가 있다고 하여 기존 문석소의 속성이 별도의 구분 없이 토성으로 들어갔다. 방씨는 문석과 같다고 부기되어 있어 화물장과 문석소의 망성이던 방씨가 이 시기에 여전히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향리 방맹(方萌)의 정려가 예산읍에 있으며 명정 현판에 “孝子戶長方萌之門”이라 쓰여 있어 방맹의 집안이 향리 중에서 호장층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인물 조에 오른 사람 4인의 이름은 효자 김근(金勤)과 이개우(李開右), 호장(戶長) 장중연(張仲淵)의 딸 열녀 매읍덕(每邑德)이다. 김씨나 이씨는 토착 성씨 목록에는 보이지 않는 성씨이므로 조선 초에 입향한 이거 성씨인 듯하나, 호장 장중연은 바로 예산을 본관으로 하는 예산장씨(禮山張氏)이다. 호장이란 고을 향리들 중 우두머리격의 자리였다. 매읍덕은 1503년(연산군 3) 정문(旌門)과 복호(復戶)의 포상을 받은 열녀이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는 향리 방맹과 유학(幼學) 박충(朴忠), 봉사(奉事) 이문경(李文卿) 등이 보인다.
한편, 조선 후기인 1700년대에 편찬된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별도의 지역 구분 없이 신, 손, 심, 장의 네 성씨만 확인된다.
[대흥현의 토착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의 대흥 토성은 이(李)·한(韓)·백(白)의 세 성씨가 있고, 없어진 성인 망성으로 장·오(吳)씨가 있다. 거변소(居邊所)의 속성(續姓)은 홍(洪)·이씨가 있는데, 이 중 이씨의 자손이 향역(鄕役)에 종사한다는 부기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본현 성씨가 이(李)·한·장·오·백씨이고, 거변의 홍·이씨가 등재되었는데, 망성인 장·오씨가 모두 본현에 들어가고, 기존 본현 토성 세 번째였던 백씨보다 앞선 순위라는 점이 특이하다. 같은 책의 인물 조에는 고려 사람 한문준(韓文俊)의 관직 생활 중 공적을 칭송하고 있어, 대흥한씨(大興韓氏)의 존재가 확인된다. 후손 한취(韓就)도 고려 때 진사 급제한 관료였다. 고려 때의 이성만(李成萬)과 이순(李淳) 형제는 효행과 우애로 포상된 인물로 대흥현 관아 터 앞에 세워진 이들 형제의 정려비에는 호장으로 기록되어 있어 토착 향리 집안임을 알 수 있고, 본현 성씨 중 첫 번째로 등재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는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한씨가 다른 성씨보다 더 위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물 조에 수록된 고려 열녀 곽씨(郭氏)는 박근(朴根)의 아내였는데, 곽씨와 박씨 모두 성씨 조에는 보이지 않지만 고려 말~조선 초에 입향한 당대의 재지 세력이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대흥 사람 박원충(朴元忠)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 박씨가 입향하여 세거의 기반을 마련한 듯하다.
한편,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 성씨 조에는 기존의 성씨 조에 있던 성씨 중 이·한·장·오·백·홍씨 등 6개 성씨가 남았고, 추가로 의성김씨(義城金氏)·양주조씨(楊州趙氏)·창녕성씨(昌寧成氏)·파평윤씨(坡平尹氏)·울산박씨(蔚山朴氏)·전주이씨(全州李氏)가 등재되었다.
[덕산현의 토착 성씨]
덕산현은 고려 말까지 덕풍(德豐)과 이산(伊山) 두 개 고을이었던 것을 합쳐 덕산현으로 편제한 것이다. 따라서 조선 초기의 지리지에는 이 두 개 고을의 성씨가 각각 나누어 등재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덕풍 성씨는 황·송·이·윤, 이산 성씨는 고·오·문·송씨이며, 각 성씨와 순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동일하다. 다만 추가된 것은 신곡소(薪谷所)의 장(蔣)씨이다. 덕산에 속해 있던 소(所)는 내박(乃朴)과 신곡(薪谷) 두 곳이었는데, 성씨는 신곡소만 있다. 인물 조에 등재된 인물이 없어 조선 초기 토착 성씨가의 인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 전기의 지역 인물을 알 수 있는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사노(私奴) 윤희(允熙)와 풍이(風伊) 및 서인(庶人) 백춘복(白春福)이 등장하고 있어 토착 재지 세력으로 보기는 어려운 인물뿐이다.
조선 후기 지리지인 『여지도서』에는 황 송·이·윤·고·오·문·장씨 등 8개 성씨가 등재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예산 지역 토착 성씨의 거주 현황은 다음과 같다.
예산장씨는 예산군에 12명. 전국에 1,920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흥이씨는 충청남도에 87명, 전국에 4,172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흥백씨는 충청남도에 71명, 전국에 4,041명이 거주하고 있다.
덕산황씨는 충청남도에 72명, 전국에 3,857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