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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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穆 |
영어공식명칭 | Lee Mok |
이칭/별칭 | 명원(明遠)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출생 시기/일시 | 1599년 - 이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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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24년 - 이목 사망 |
출생지 | 이목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
거주|이주지 | 이목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
묘소|단소 | 이목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산31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한산(韓山)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무신.
[개설]
이목(李穆)[1599~1624]은 이괄(李适)의 난 때 적의 동태를 살피다 잡혀 협조하지 않고 죽은 충신이다.
[가계]
이목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명원(明遠)이다. 아버지는 정사공신(靖社功臣) 이의배(李義培)이다.
[활동 사항]
이목은 지금의 예산군 삽교읍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어서 장차 무장이 되기 위하여 무예를 닦았다.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무과에 응시하려던 중인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관찰사이자 부원수이던 외삼촌 이서(李曙)의 휘하에 종군하였다. 이괄이 도성인 한양을 점령하자, 이목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하여 개성으로부터 소덕문(昭德門)을 통해 서울에 잠입하다가 적에게 체포되었다.
이목은 이괄에게 끌려가서 관군의 형세에 관한 문초를 받았으나 도리어 이괄의 반역을 꾸짖었을 뿐 굴하지 않았다. 이괄이 혹형을 가하면서 문초를 거듭하였으나 끝내 항복을 거부하다가 참형을 당하였다. 뒷날 조정에서는 이목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호조판서에 추증하고 한원군(韓遠君)에 봉하였다.
[묘소]
이목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청송면 대탄리에 있다가 2011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로 이전하였다. 충신 정려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