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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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民瞻 |
이칭/별칭 | 은열(殷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조민희 |
출생 시기/일시 | 963년 - 강민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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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012년 - 강민첨 안찰사로 재임하며 동여진 격퇴 |
활동 시기/일시 | 1016년 - 강민첨 내사사인 승진 |
활동 시기/일시 | 1018년 - 강민첨 상원수에 임명되어 거란 격퇴 |
활동 시기/일시 | 1019년 - 지중추부사병부상서 승진 |
몰년 시기/일시 | 1021년 - 강민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5년 - 후손들이 강민첨 사당 건립 |
출생지 | 강민첨 출생지 - 경상남도 진주시 |
묘소|단소 | 강민첨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이티숲실길 42-18[이티리 602] |
사당|배향지 | 두방영당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晉州) |
대표 관직 | 부원수|병부상서 |
[정의]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고려 전기의 무신.
[개설]
강민첨(姜民瞻)[963~1021]은 문신으로 관직에 나아갔으나, 고려 현종 때 동여진과 거란의 침입을 막으면서 무신으로서 이름을 크게 떨쳤다.
[가계]
강민첨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들은 강단(姜旦)이다.
[활동 사항]
강민첨은 963년(광종 14) 강주[현 경상남도 진주시] 개경향에서 태어났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신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012년(현종 3) 동여진이 쳐들어오자 안찰사로서 주둔병을 이끌고 나아가 격퇴하였다. 1016년 내사사인으로 승진하였다. 이어서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자, 상원수로 봉해져 강감찬의 부장으로서 출전하여 홍화진에서 적을 대파한 뒤 개경으로 진군하던 거란군을 추격하여 자주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공으로 추성치리익대공신으로 녹훈되었고, 이듬해인 1019년에는 지중추부사 병부상서에 올랐다. 1021년 사망하였다.
[묘소]
강민첨의 묘소는 예산군 대술면 이티숲실길 42-18[이티리 602]에 있다.
[상훈과 추모]
강민첨은 사망 후 태자대사 문하시랑으로 증직되고 은열(殷烈)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문종 때 공신각에 올랐다. 1975년 후손들이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사당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