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715
한자 朴安行
영어공식명칭 Park Anhaeng
이칭/별칭 성지(聖之),석곡(石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8년연표보기 - 박안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2년 - 박안행 사마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12년 - 박안행 이인도·창락도 찰방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21년 - 박안행 별시문과 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박안행 사헌부감찰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박안행 의금부도사 역임
몰년 시기/일시 1656년연표보기 - 박안행 사망
출생지 박안행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송석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박안행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밀양(密陽)
대표 관직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정선군수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개설]

박안행(朴安行)[1578~1656]은 한성부서윤, 통례원봉례 등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가계]

박안행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지(聖之), 호는 석곡(石谷)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형조참판을 지낸 박광영(朴光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귀후서별제를 지낸 박조(朴藻)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이다. 아버지는 생원 박승현(朴承賢)이며, 어머니는 군수 유영(兪泳)의 딸이다. 박승휴(朴承休)박승건(朴承健)이 아들이며 우암 송시열의 문인인 제주목사 박성석(朴星錫)이 증손자이다.

[활동 사항]

박안행은 1578년(선조 11) 현 예산군 응봉면 송석리에서 태어났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창락도찰방을 역임하였고 상의원직장으로 옮겼다가 다시 군기시주부에 승진되었다. 이때 이이첨(李爾瞻)의 공정치 못한 모략이 있자 곧바로 벼슬을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할 때 모든 관원이 조정에 모여 폐비를 주장할 때 박안행은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외직을 청한 사실을 볼 때 박안행의 지조가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1624년(인조 2) 사헌부감찰로 있다가 익위사위솔을 거쳐 용담현감으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당진현감이 되어 도적을 많이 잡아 백성의 피해를 덜어 주었다.

박안행은 의금부도사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수행해 남한산성에 갔다가 청에 항복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이후 은둔 생활을 하다가 조정에 나아가 한성부서윤과 통례원봉례를 역임하였고, 정선군수를 지냈다. 1656년(효종 7)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박안행의 묘소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묘갈명을 기록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안행은 손자 박신주(朴新冑)의 공적으로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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