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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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季甸 |
이칭/별칭 | 병보(屛甫),존양재(存養齋),문열(文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민희 |
[정의]
조선 전기 예산 출신의 문신.
[개설]
이계전(李季甸)[1404~145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수양대군을 도왔으며 공신에 책봉되었다.
[가계]
이계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할아버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며, 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종선(李種善),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 사항]
이계전은 1427년(세종 9)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학사가 된 이후 다수의 국가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1435년 집현전부교리로 승진하였고, 1436년 왕명으로 김문(金汶) 등과 함께 총 149권의 『강목통감훈의(綱目通鑑訓義)』를 편찬하여 세종이 이계전을 비롯한 찬집관들을 불러 노고를 치하했다고 한다. 1438년 아버지 이종선이 사망하자 벼슬을 사임하고 3년간 시묘를 산 뒤 1441년 복직하였다. 1445년 집현전직제학으로 있을 때 사창(社倉)과 의창(義倉)의 문제점 및 저화(楮貨)[고려 말기·조선 전기에,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 쓰던 종이돈] 무용론,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이계전은 1447년 동부승지, 1450년 좌부승지를 거쳐 도승지로 승진하였다. 1452년(단종 즉위년) 『세종실록(世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3년 호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로 자리를 옮겼으며, 병조판서로 재임할 때 수양대군이 김종서(金宗瑞) 등의 권신들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일으키는 데 가담해 좌익공신(佐翼功臣)에 녹훈되었다. 1455년(세조 1) 이조판서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 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1458년 세조로부터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세조를 도운 공로에 대해 칭송하는 특별 교서를 받았다. 1459년 7월 경기관찰사에 임명되었는데, 1459년 9월에 사망하였다.
[묘소]
이계전의 묘소는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사곡리 가래울마을에 있다. 묘역에는 1999년에 조성한 이계전 신도비가 있으며, 묘역 입구에는 2층 양옥 건물로 지어진 숭모재(崇慕齋)가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이계전은 1453년(단종 1)의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정인지(鄭麟趾) 등과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또한 단종 복위 운동 때 세조를 도운 공로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좌익공신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