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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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治邦 |
이칭/별칭 | 성민(聖敏),고은(高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3월 - 정치방 인조반정에 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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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정치방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공산(公山) |
대표 관직 | 선전관|참판 |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개설]
정치방(鄭治邦)[?~?]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宗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참판에 증직된 조선 후기의 무신이다.
공산정씨가 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기묘사화 이후 정빈(鄭濱)[?~?]이 고덕면으로 입향한 이후이다. 정확한 입향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정빈의 아들 정치방(鄭治邦)[?~?]이 인조반정 이후 공주에서 이거하여 아버지의 묘소를 정한 것이라고도 한다.
[가계]
정치방의 본관은 공산(公山)이며 자는 성민(聖敏), 호는 고은(高隱), 시호는 충의(忠義)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사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宗功臣) 1등에 녹훈되고 호조참판에 증직된 충정공(忠貞公) 정빈(鄭濱)이다. 숙종(肅宗) 때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에 녹훈된 정태방(鄭泰邦)이 동생이다. 정치방의 후손 중에는 아들 정준(鄭俊)과 증손자 정숙(鄭淑), 고손자 정용상(鄭龍祥) 등이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8대손 금호(錦湖) 정해열(鄭海悅)은 효자정려를 받았다.
[활동 사항]
정치방은 사과(司果)를 역임하였고, 벼슬이 선전관(宣傳官)에 이르렀다. 이후원(李厚源), 김류(金瑬), 이귀(李貴) 등과 비밀리에 모의하여 1623년 3월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일으켰다. 정치방은 인조반정 이후 진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참판에 증직되었다.
[묘소]
정치방의 묘소는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치방의 충훈 정문이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