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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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挺 |
이칭/별칭 | 여호(汝豪),한수(漢叟),죽천(竹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민희 |
출생 시기/일시 | 1551년 - 조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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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3년 - 조정 정시 문과 을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86년 - 조정 문과 중시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조정 임진왜란 당시 세자 호종 |
활동 시기/일시 | 1601년 - 조정 한성판윤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9년 - 조정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조정 탄핵 |
활동 시기/일시 | 1628년 - 조정 해남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629년 - 조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75년 - 조정 신원 |
거주|이주지 | 조정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 |
부임|활동지 | 조정 부임지 - 강원도 회양군 |
부임|활동지 | 조정 부임지 - 경기도 광주시 |
부임|활동지 | 조정 부임지 - 경기도 수원시|화성시 일대 |
유배|이배지 | 조정 유배지 - 전라남도 해남군 |
묘소|단소 | 조정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양주(楊州) |
대표 관직 | 우참찬|형조판서|우의정 |
[정의]
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조정(趙挺)[1551~1628]은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인조반정 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아버지인 조충수(趙忠秀)가 말년에 대흥 지역[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은거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었다.
[가계]
조정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여호(汝豪), 호는 한수(漢叟)·죽천(竹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수견(趙壽堅)이고, 할아버지는 조방보(趙邦俌)이다. 아버지는 영의정과 한양부원군에 증직된 조충수이며, 어머니는 양윤형(梁允亨)의 딸 남원양씨(南原梁氏)이다. 부인은 구윤덕(具潤德)의 딸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활동 사항]
조정은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으로 등용되었다. 1586년 사정으로서 다시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예문관·홍문관에 등용되고, 이어 수찬·교리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은 보덕(輔德)으로서 세자를 호종하였고, 전적·필선을 거쳐 회양부사·광주목사·남양부사·안변부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호조판서·대사간·동부승지·부제학·동지중추부사·대사성, 이조·호조·형조의 참판 및 지의금부사·대사헌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01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한성판윤이 되었고, 1609년(광해군 1) 형조판서로 또다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우참찬·형조판서·우의정을 역임하고 형난공신 2등에 책봉되었으며, 한천군(漢川君)에 책봉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 서인 세력이 정권을 잡자 조정은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또한 광해군 때 공신이 되었다는 이유로 죄목이 가중되어 1628년 해남에 유배되어 풍토병에 시달리다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정의 저서로는 『동사보유(東史補遺)』가 있다.
[묘소]
조정의 묘소는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조정은 1675년(숙종 1)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