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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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馨益 |
영어공식명칭 | Lee Hyeongi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출생지 | 이형익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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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이형익 활동지 - 서울특별시 |
성격 | 의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현령 |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의관.
[개설]
이형익(李馨益)[?~?]은 조선 후기 궁중 의원으로 활동한 예천 출신 의관이다. 인조(仁祖)·효종(孝宗)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활동 사항]
이형익은 예산군 대흥면에서 태어났다. 1632년(인조 10) 침술이 탁월하다 하여 내의원(內醫院)의 추천으로 서울에 초청되었으며, 왕실 의관으로 인조의 신임을 받았다. 1633년부터 인조가 사망한 1669년(인조 27)까지 빈번히 번침(燔鍼)[뜸질과 침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실시하여 효험이 있자 특명으로 현령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645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주치의를 역임한 이형익은 소현세자가 죽자 사헌부·사간원으로부터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두터운 신임으로 벌을 받지 않았다. 1649년 인조가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그 책임을 물어 이형익을 함경북도 경원(慶源)으로 유배시켰으나 2년 후 왕대비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趙氏)의 병세가 위급해지지 사면하여 다시 불러 들였다.
이형익은 인조·효종의 신임뿐만 아니라 서인 정권의 비호를 받았다. 이후 효종이 죽고 현종이 즉위하자 신료들이 이형익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