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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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存昌 |
영어공식명칭 | Lee Jonchang |
이칭/별칭 | 루도비코,단원(端源),내포의 사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태 |
출생 시기/일시 | 1759년 - 이존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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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99년 - 이존창 황심을 북경 밀사로 파견 |
활동 시기/일시 | 1801년 3월 18일 - 이존창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801년 4월 9일 - 이존창 사망 |
출생지 | 이존창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신종1리 |
활동지 | 이존창 활동지 - 충청남도 예산군 |
성격 | 종교인|천주교 순교자 |
성별 | 남 |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개설]
이존창(李存昌)[1759~1801]은 ‘내포의 사도’라 불리며 내포 지역 뿐만 아니라 전라도 고산 지역, 경상도 청송과 영양 등지에 이르기까지 천주교가 확산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천주교 북경교구에 밀사를 파견하는 등 초창기 조선 천주교회의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이존창은 1759년에 예산군 신암[현 예산군 신암면 신종1리]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루도비코이고, 일명 단원(端源)이라고도 한다. 초기 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權日身)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충청도 내포 지역은 한국 천주교 창설 초창기부터 가장 왕성한 포교가 이루어진 곳이다. 동시에 천주교 신앙이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는 데 배후지 역할을 하였다. 이존창은 내포의 사도로 불리며 내포 지역은 물론이고 전라도 지역까지 전교하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달레에 의하면 내포의 천주교회가 이존창을 통해 여사울에서 시작되었으며 이존창을 통해 입교한 집안이 인근 동리에서 300가구에 이르렀다고 한다. 입교자들은 이존창을 교주(敎主)로 여기고 있었고, 당시 충청도관찰사 박종악은 이존창을 괴수(魁首)로 지목하였다.
이존창은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 때 붙잡혀 심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한때 배교하였으나, 그 뒤 홍산(鴻山)으로 이사하여 전라도 고산 등지에서 전교 활동을 펼치며 밀입국한 중국인 사제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활동을 돕기도 하였다. 1798년에는 수감되어 있으면서도 김유산을 설득하여 북경에 밀사로 보내기도 하였다. 1799년에도 황심 토마스를 북경 밀사로 파견하는 등 성직자 영입과 초창기 천주교회의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약하였다.
이존창은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1801년 3월 18일 체포되어 4월 9일 공주에서 참수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는 내포 지역 천주교회 발전 과정에서 이존창의 역할과 업적 및 여사울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2008년 ‘예산 여사울 이존창 생가 터’를 충청남도 기념물 제177호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