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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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商泰 |
영어공식명칭 | Lee Sangtae |
이칭/별칭 | 태이(泰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출생 시기/일시 | 1644년 - 이상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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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96년 - 이상태 사망 |
출생지 | 이상태 출생지 - 경기도 파주시 |
거주|이주지 | 이상태 이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황계리 |
성격 | 효자|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전의(全義) |
[정의]
조선 후기 예산에서 활동한 효자이자 학자.
[개설]
이상태(李商泰)[1644~1696]는 극진히 모시던 부모가 사망하자 예산으로 낙향하여 평생 후진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던 학자이다.
[가계]
이상태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태이(泰而)이다.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충무위부사과 이동양(李東陽), 어머니는 선교랑 박잠(朴潛)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활동 사항]
이상태는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과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부모를 봉양하는 데 어그러짐이 없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바치는 등의 효행을 보였다. 부모가 사망한 뒤에는 예산으로 이사하여 풍암(楓巖)[현 예산군 신암면 황계리] 근처에 초가를 짓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