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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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允行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민희 |
출생 시기/일시 | 1920년 11월 16일 - 김윤행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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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김윤행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973년 - 김윤행 대법관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 김윤행 대법관 퇴임 |
몰년 시기/일시 | 1990년 11월 29일 - 김윤행 사망 |
출생지 | 김윤행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노전리 |
묘소 | 김윤행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노전리 |
성격 | 법조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법관 |
[정의]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법조인.
[개설]
김윤행(金允行)[1920~1990]은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재직하였다. 1973~1980년까지 대법관을 지냈다.
[활동 사항]
김윤행은 1920년 11월 16일 예산군 광시면 노전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큰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광시공립보통학교, 공주공립중학교를 거쳐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김윤행은 군부 독재 시기에 대법관을 지냈으나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법조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윤행은 전원 합의제로 다루어진 주요 시국·인권 사건에서 군사 정권에 대항하여 일곱 차례나 소수 의견을 제출하였는데, 이는 헌정 이후 대법관 중 다섯 번째로 소수 의견을 많이 낸 것이었다.
김윤행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소수 의견을 제출하였다가 대법관에서 물러났으며, 1990년 11월 29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윤행은 1973년 「형량 정립(刑量定立)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주요 내용은 컴퓨터로 예상 형량을 계산해 재판에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당시는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으며, 형량 정립은 당시 법조계가 당면한 문제 중 하나였다.
[묘소]
김윤행의 묘소는 예산군 광시면 노전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