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801
한자 方仁根
이칭/별칭 벽파(碧波),춘해(春海)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최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12월 29일연표보기 - 방인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방인근 단편 「눈오는 밤」발표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방인근 평안북도 영변 숭덕중학교 교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방인근 시 「하늘과 바다」 발표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방인근 『조선문단』 창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방인근 『신생』 편집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방인근 장편소설 「마도의 향불」 『동아일보』에 연재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방인근 『시조』 편집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방인근 춘해영화사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방인근 시나리오 「젊은 아내」 집필
몰년 시기/일시 1975년 01월 01일연표보기 - 방인근 사망
출생지 방인근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방인근 이주지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면
거주|이주지 방인근 이주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학교|수학지 온양보통학교 -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
학교|수학지 배재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강동구 정동
학교|수학지 영명고등학교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학교|수학지 아오야마학원 - 일본 도쿄도
학교|수학지 주오대학 - 일본 도쿄도 하치오지
성격 시인|소설가|영화제작자
성별
본관 온양(溫陽)
대표 경력 『신생』 편집장|『시조』 편집장|춘해프로덕션 대표

[정의]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인이자 영화제작자.

[개설]

방인근(方仁根)[1899~1975]은 신문학기에 활동한 유일한 예산 출신 문인으로, 애욕의 문제를 다룬 통속적인 대중소설을 주로 썼다. 초기에는 시를 썼으나 소설로 전향하였고 평론과 희곡 작품도 썼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호는 벽파(碧波)·춘해(春海)이다.

[활동 사항]

방인근은 1899년 12월 29일 예산군 예산읍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인 1904년 온양으로 옮겨 살았다. 1910년 온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14년 공주 영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로 올라가 1917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야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주오대학[中央大學] 독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23년 시 「하늘과 바다」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소설 창작과 평론 작업에 몰두하였다. 1924년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와 함께 종합 문예 월간지인 『조선문단』을 창간하였고, 1932년 11월 4일부터 1933년 6월 12일까지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마도의 향불」을 연재하였다. 『조선문단』은 이광수, 나도향(羅稻香), 현진건(玄鎭健) 등이 참여하며 근대 문학을 이끌었으나 휴간을 반복하다 1935년 26호까지 내고 종간되었다.

방인근은 1927년 평양에 있는 숭덕중학(崇德中學)에서 교편을 잡았고, 1929년 기독교신보사에 입사하였다. 1931년 『신생(新生)』 편집장, 1935년 천주교 잡지 『시조(詩兆)』 편집장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춘해프로덕션을 창립하였고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농민문학과 종교문학』을 비롯한 각 잡지의 평론 및 월평을 쓰는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이어 갔다. 방인근은 주로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내용의 소설을 발표하였으며, 한때 탐정물을 쓰기도 하였다. 1975년 1월 1일 서울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방인근의 주요 작품으로는 「분투(奮鬪)」, 「살인」, 「죽지 못하는 사람들」, 「외로움」, 「최박사(崔博士)」, 「노총각」, 「강신애(康信愛)」, 「자기를 찾은 자」, 「반동(反動)」, 「순간의 낙원」, 「살인방화」, 「백의인농민(白衣人農民)」, 「금비녀」, 「평화로운 봄」, 「새길」, 「그 후의 방랑의 가인(歌人)」, 「은행나무」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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