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848
한자 一葉
이칭/별칭 김일엽(金一葉),김원주(金元周)
분야 종교/불교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시대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지원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 - 일엽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일엽 만공선사로부터 수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일엽 『신여자』를 창간하여 주간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71년연표보기 - 일엽 사망
출생지 일엽 출생지 - 평안남도 용강군
학교|수학지 삼숭학교 - 평안남도 진남포시
학교|수학지 이화학당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학교|수학지 닛신학교 - 일본
활동지 수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수덕사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문인.

[개설]

일엽(一葉)[1896~1971]은 일제강점기 신교육을 받은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며, 최초의 여성잡지 주간을 역임한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불교에 귀의하여 비구니 승가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한 승려이기도 하다. 속명은 김원주(金元周)이다.

[활동 사항]

일엽은 1986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목사였으므로 20대까지는 교회에 다니며 성장하였다. 일엽은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찍 개화하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구세학교(救世學校)와 진남포 삼숭학교(三崇學校)를 거쳐 서울 이화학당에서 수학하였다. 또한 일본 닛신학교[日新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하여 여성 해방과 자유연애를 주장하였으며, 『동아일보』 문예부 기자, 『불교(佛敎)』지의 문화부장 등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기독교 신자였으나 1928년 만공선사(滿空禪師) 문하에서 득도·수계(受戒)하고 불교 신앙으로 전향하게 되어 만공이 있던 예산 수덕사(修德寺)에서 불제자로 일생을 마쳤다. 수덕사에 있으면서 견성암이란 비구니 선원을 세웠다. 1971년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일엽의 문학 활동은 19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20년 자신이 주간으로 있던 『신여자』 3월호에 소설 「계시(啓示)」를, 4월호에 「어느 소녀의 사(死)」를 발표하였다. 1921년 1월 『폐허』 2호에 「먼저 현상을 타파하라」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신민공론』의 편집동인이 된 후 1927년 1월 『문예시대』에 「단장(斷腸)」, 1932년 4월 『삼천리』에 「애욕을 피하여」, 1933년 1월 『삼천리』에 「오십 전 은화」 등의 단편을 발표하고, 수필과 시론도 썼다. 또한 나혜석(羅蕙錫)·김명순(金明淳) 등과 함께 자유연애를 부르짖고 여성의 자유와 개방을 추구하며 지위 향상 운동을 폈다.

일엽의 작품으로는 소설 「계시」·「자각」·「순애의 죽음」·「사랑」 등과, 시 「추회(秋懷)」·「이별」·「동생의 죽음」 등이 있다. 수상록 『청춘을 불사르고』(문선각, 1962)·『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휘문출판사, 1965) 등을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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