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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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門 |
이칭/별칭 | 혜암(慧庵),최순천(崔順天)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지원구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현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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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서품 시기/일시 | 1897년 - 현문 출가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현문 만공선사로부터 오도 인가 |
활동 시기/일시 | 1956년 - 현문 수덕사 조실 추대 |
몰년 시기/일시 | 1985년 - 현문 입적 |
출생지 | 현문 출생지 - 황해도 배천군 |
활동지 | 수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덕숭총림 방장 |
[정의]
충청남도 예산 수덕사 덕숭총림의 방장을 지낸 승려.
[개설]
현문(玄門)[1884~1985]은 덕숭총림(德崇叢林)의 제1대 방장을 지낸 승려이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속명은 최순천(崔順天), 법호는 혜암(慧庵)이다. 아버지는 최사홍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현문은 1884년 황해도 배천에서 태어났다. 1896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이듬해 출가하여 양주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서 삭발하였다. 1900년 보암(保庵)을 은사로, 금운(錦雲)을 계사(戒師)로 하여 득도하였다. 1902년 전국의 이름 있는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수행하였고, 1908년 통도사 내원선원(內院禪院)에서 처음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가 참선수행을 시작하였다. 1911년 해담화상(海曇和尙)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성월선사의 밑에서 선(禪)을 공부하여 1913년 성월선사로부터 화두(話頭)를 받았다. 만공(滿空)·혜월(慧月)·용성선사(龍城禪師)를 차례로 모시고 6년 동안 용맹정진한 뒤 묘향산 상원사(上院寺) 주지와 정선 정암사(淨巖寺) 주지를 역임하였고, 1929년 수덕사의 조실 만공선사로부터 오도(悟道)[불도의 진리를 깨달음]를 인가받았다. 그 뒤 전국의 주요 사찰을 순례하면서 보임(保任)[깨달은 내용을 더욱 갈고 닦음]하며 참선수행자들을 지도하다가, 1956년 수덕사 조실로 추대되어 덕숭산(德崇山)에 머무르면서 30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고 중생을 제도하였다.
1984년 100세의 나이로 미국 서부의 능인선원(能仁禪院) 봉불식(奉佛式)에 참여하여 우리나라의 선을 미국에 전파하고 귀국하였으며, 1984년 말 설립된 덕숭총림 제1대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었다. 1985년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현문은 수행하면서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동정(動靜)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고 하리라[語默動靜句 箇中誰敢着 問我動靜離 卽破器相從].”라는 오도송을 지었다.
1929년 수덕사의 조실 만공선사로부터 오도를 인가받고, “구름과 산은 다름없으나 또한 대가풍도 없다. 글자 없는 도장을 그대 혜암에게 주노라[山無同別 亦無大家風 如是無文印 分付慧庵汝].라는 전법게(傳法偈)를 받고 법통을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