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038
한자 華岩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용궁리 79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소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752년연표보기 - 화암사 김한신이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846년 - 화암사 김명희 등이 증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48년 - 화암사 김상희, 조석신 등이 「화암사중수건기」 제작
현 소재지 화암사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용궁리 799]지도보기
성격 사찰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사찰.

[개설]

화암사경주김씨의 원당 사찰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남편인 김한신(金漢藎)[1720~1758]이 1752년(영조 28)에 중건하였으며, 영조가 절의 이름을 화암사(華岩寺)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후 헌종 대에 다시 훼손되자 추사 김정희 일가가 다시 중건하였는데, 건물은 현재 요사체로 사용되고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창건 유래는 알 수 없고, 삼국시대에 지어졌다고 전하기도 한다. 절 뒤에 병풍바위가 있는데, 옛 절은 병풍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절이 없어지고, 그 들에 조그만 탑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화암사의 역사는 문헌이 전래되는 것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절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다 현재는 수덕사 유물 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 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 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중건기는 1848년(헌종 14)에 김명희(金命喜)가 짓고 김상희(金相喜)가 쓴 뒤 조석신(曹錫臣)이 새긴 것이다. 김명희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데,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 뛰어났다.

현판문의 내용으로 절의 역사를 알아보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1752년(영조 28) 본관이 경주인 김한신이 아버지 김흥경(金興慶)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절을 중건하였다.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의 남편으로서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는데, 사후에 부부가 용산 아래 앵무봉에 합장되면서 김한신 일가가 화암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뒤 1846년(헌종 12) 절이 허물어지며 퇴락되자 김명희가 여러 친지와 더불어 무량수각·요사·선실(禪室)·시경루(詩境樓)·창고 등을 지었다. 또한 옛 법당터에 약사암을 중건하고 삼존상을 봉안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화암사의 북서쪽에는 평평한 지대가 있는데, 승려의 전언에 의하면 원 화암사의 사역(寺域)이었다고 한다. 사지(寺址)는 산사면을 깎아서 동남향으로 사찰을 조영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가람(伽藍)을 추정할 만한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ㄷ자형’의 요사채[원통보전]는 김한신이 지은 건물로 그 역사가 깊다. 화강석재 기단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앞면 6칸으로 왼쪽의 협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칸의 어칸과 오른쪽 협칸은 원통보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의 앞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오른쪽의 툇간은 누각으로 되어 있다. 건물은 방형의 화강석재로 된 자연 초석 위에 방형의 기둥을 올리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대웅전은 요사채 뒤쪽에 있다. 근래에 지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대웅전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에는 옛날에는 동자 관음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었는데 60여 년 전에 도난당하여 지금은 향천사의 천불 중 하나를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의 오른쪽에 옛날 탑재석을 보완하여 세운 오층 석탑이 있다. 화강석재로 만든 오층석탑으로 상대갑석과 1층 탑신석, 2~5층의 옥개석은 옛날 탑재석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완된 것이다. 2개의 별석으로 된 지대석 위에 우주를 모방해 새긴 면석을 올리고 위에 하나의 대판석으로 이루어진 상대갑석을 올리고 있다. 상대갑석은 옥신 괴임 부분을 몰딩한 흔적이 남아 있다. 각각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신석은 각각 우주를 모방해 새겨져 있다. 옥개석은 1층과 5층의 옥개 받침은 2단인데 2~4층은 3단의 옥개 받침을 하고 있다. 각 옥개석은 완만한 낙수면에 전각의 반전이 약간씩 되어 있다.

사찰 곳곳에서 추사(秋史)의 암각문과 편액을 볼 수 있으며, 비구니 승려의 수도 도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화암사 중건 때 추사가 제주에서 써 보낸 「시경루(詩境樓)」, 「무량수각(無量壽閣)」편액은 현재 예산 수덕사 근역성보관에서 소장 관리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

김한신을 비롯한 김정희, 김명희 등 조선 후기에 경주김씨 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중건된 사찰로, 주변의 김정희 선생 유적[충청남도 기념물 제24호], 화순옹주 홍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 등과 함께 예산에서 추사 일가의 행적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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