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053
한자 監理敎會
영어공식명칭 Methodist Church
이칭/별칭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개항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성준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18세기 영국에서 창립된 개신교의 한 교파.

[개설]

1885년(고종 19)에 미국에서 전래된 감리교는 1890년대에 예산·홍성 지역에 전래되었고, 1912년 삽교에 좌방교회[현 등대교회]가, 1916년 예산읍내에 예산제일감리교회가 건립되면서 전파되었다. 예산 지역의 감리교회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운동을 펼치기도 하면서 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

[미국 개신교회의 한국 전래]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 후, 미국에서 실질적인 선교를 위해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1885년 4월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감리교]와 언더우드(H. G. Underwood) 부부[장로교]가 제물포[인천]에 상륙하였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부부는 학교를 세우고 성경 번역 등에 주력하면서 선교 사업을 펼쳤다.

1893년 이래 미국 남장로교는 전라도에 이어 충청도로 선교 지역을 확장하고 있었고, 미국 침례교의 ‘엘라딩기념선교회’ 선교사들이 1896년에 강경과 공주에 들어와서 선교 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양 선교부 사이에 선교 지역 협상이 이루어졌다.

미국감리회는 1896년에 스크랜튼(W. B. Scranton, 시란돈), 1898년에 스웨어러(W. C. Swearer, 서원보)[1871~1916] 선교사를 연달아 충청남도 지역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엘라딩기념선교회 선교사들이 철수한 1899년 이후에 북장로교와 미국감리회 선교부 간에 선교 지역 분할 협상을 했지만 합의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충청남도 지역은 미국 감리회와 북장로교 그리고 남장로교의 선교사들이 동시에 선교하는 지역이 되었다.

미국감리회는 공주와 청주·홍주·천안·충주 등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고, 북장로교는 청주를 중심으로 보은·괴산·영동·조치원·옥산에서, 남장로교는 충남 남부 지역에서 북부 지역으로 선교 범위를 넓혀갔다. 그러다가 1907년 미국감리회와 북장로교·남장로교는 군산과 공주 사이의 오천, 보령, 남포, 홍산, 비인, 서천, 한산, 임천, 안면도는 남장로교가 맡고, 그 이북 지역은 미국감리회가 담당하기로 새로운 선교 분할 협정을 체결했다. 새로운 선교 분할 협정은 1936년 협정이 철폐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감리교회의 충청 지역 선교 활동]

미국감리회의 충청도 지역에 대한 선교 사업은 홍성·예산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1897년 덕산·삽교 지역에는 류제가 중심이 되었던 ‘대천교회’와 조원식이 중심이 되었던 ‘수촌교회’라는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산 지역의 동학교도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교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그 후 1898년 스크랜튼 선교사가 그의 어머니, 이경숙 전도부인 등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할 때 “덕산과 해미도 방문하였다.”라는 기록이 있고, 1899년 봄 스웨어러 선교사는 5주 동안 전도 여행을 하면서 해미를 방문하였다. 1899년의 미감리회 연회록 임명기에 ‘덕산, 홍주’가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고, 1900년 1월 제물포에서 열린 사경회에 홍주 지역 교회가 참가한 것으로 미루어, 덕산과 홍성에 이미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예산읍 지역에도 신앙 안내서를 팔면서 선교하던 초기 개신교 선구자인 매서인(賣書人)에 의해 감리교 신앙 공동체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성 지역은 한때 북장로교에서 선교를 했지만, 1907년의 협정에 의하여 감리교 측이 맡았다. 아산 지역에는 인천 내리교회 교인이었던 최봉현이 1901년 구미동교회[현 아산시 염치읍 백암교회]를 설립하였고, 그 교회 내에 영신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1903년 샤프(R. A. Sharp) 선교사는 당진 지역에 난지도교회와 삼화교회를 설립하였고, 1904년 이연일 일가족이 중심이 되어 둔포교회를 설립하였으며, 1912년에는 양상준, 염상근, 조성운 세 사람이 안면도에 창기교회[현 안면제일교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 윤치호는 자신의 고향인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에 있는 별장을 기증하여 신항교회를 설립하였다.

[변천]

1912년 2월 임명호 등의 노력과 갈산교회[홍성군 홍북면 갈산리, 1905년 4월 설립]의 후원으로 좌방교회[현 삽교읍 방아리 등대교회]가 설립되었다. 1916년 4월 공주제일감리교회 초대 이용주 목사가 파견되어 와서 예산읍 임성동[현 예산군 신청사 부근]에 예산제일감리교회를 건립하였는데, 1926년에는 김병제 목사에 의해 예산리 441-5번지에 건평 38평[약 126㎡] 규모의 예배당을 완공하였다. 감리교회는 1930년대에도 계속해서 지역의 책임 교역자를 임명하면서 부흥회와 강연회를 통해 전교 활동을 전개하여 응봉면 노화리, 신례원, 오가 양막, 역전 산성리[암하리], 대술 송석리, 삽교, 고덕 대천, 봉산 효교리 등에 교회를 세웠다. 1930년대에 부임한 목사들이 민족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의 탄압을 당했으며, 1940년대에는 청년 신도들을 중심으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탄압을 당하였다.

[현황]

예산지역의 감리교회는 홍성과 가까운 오가면·삽교면·응봉면·광시면예산읍에 많은 편이다. 예산지역 감리교회의 분포를 각 읍면별로 보면 예산읍 8개, 오가면 9개, 삽교읍9개, 응봉면 5개, 고덕면 6개, 봉산면 5개, 광시면 6개, 신양면 5개, 대술면 2개, 대흥면 2개, 덕산면 3개 등 총 60개에 달한다.

[의의]

예산 지역의 감리교회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역 선교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을 통해 지역의 변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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