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080 |
---|---|
한자 | 公所 |
이칭/별칭 | 강당(講堂)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한성준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작은 단위의 천주교 신자 공동체.
[개설]
예산 지역에는 천주교 전래 초기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어 1886년 이래 정식 공소(公所)가 형성되었다.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예산 지역의 공소에서도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공소예절[성찬의 전례가 빠지고 말씀의 전례를 중심으로 구성된 기도 의식]이 행해졌으며,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서만 성사(聖事)[7성사 중 주로 고해성사와 성체성사]가 집행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신부가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공소를 방문하여 공소의 상태를 점검하고 신앙심을 북돋는 판공성사(判功聖事)를 집행하였는데, 봄에 방문하는 것을 ‘봄 판공’, 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가을 판공’이라 불렀다. 공소회장은 신부의 방문을 전후하여 공소의 상황을 정리하여 신부에게 보고하였다.
2000년대 이후 교통의 발달과 자가용의 보급으로 현재 예산군 대부분의 공소는 공소예절을 드리지 않고, 공소 신자들이 소속 성당의 미사에 직접 참례(參禮)하며, 판공성사도 성당의 관할 지역을 모두 아울러 전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공소의 독자성은 대부분 사라졌고 소속 성당과 거의 모든 신앙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변천]
내포 지역에는 천주교 전래 초기인 1790년대부터 일찍이 신앙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내포의 사도’로 불린 이존창의 생가가 있던 신암 지역이나 예산의 다른 지역에 교우촌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00여 년 간의 박해시대를 겪으며 대부분의 신자들이 더 깊은 산골이나 전라도, 경상도 등으로 이주함으로써 대부분의 교우촌이 명맥을 제대로 이어 가지 못했지만, 1886년(고종 23) 공식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에 초창기 교우촌으로 다시 신자들이 모여들면서 정식 공소가 형성되었다.
신암 지역에 여사울, 진말을 비롯하여, 예산읍 신례원 지역에 간양골, 수철리, 고새울, 대술·신양·광시·대흥 지역에 돌무덤, 숫골, 배티, 산막, 한덕골, 고지골, 우라내, 샘골 등 공소가 있었으며, 그중 일부 공소는 현재도 남아 있다. 2017년 현재 예산 지역에는 6개 성당 관할의 20개 가까운 공소가 있으나, 공소의 독자성이 사라지고 대부분 소속 성당의 1개 구역으로 편성되어 있다.
[의의]
예산 지역의 공소는 조선 후기 천주교 전래 초기부터 형성되어 내포 지역 천주교 신앙의 뿌리를 형성하였으며, 현대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성직자·수도자를 많이 배출하는 등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 역할을 다하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