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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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禮山聖堂 |
이칭/별칭 | 예산 천주교회,천주교 예산성당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로 161번길 10[예산리 664]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한성준 |
설립 시기/일시 | 1927년 - 예산본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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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2002년 2월 - 예산본당에서 예산성당으로 개칭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04월 10일 - 예산성당 충청남도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예산성당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최초 설립지 | 예산본당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로 161번길 10[예산리 664] |
현 소재지 | 예산성당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로 161번길 10[예산리 664] |
성격 | 종교 기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 있는 대전교구 소속 성당.
[개설]
예산 천주교의 중심 성당으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천주교 신부들과 지역 신자들의 노력으로 처음 세워졌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치며 교세를 키웠다.
[설립 목적]
조선 후기 천주교 전래와 박해의 역사를 간직한 예산 지역의 천주교 신앙을 예산의 중심지에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1921년 천주교 합덕본당에 부임한 페랭(P. Perrin)[白文弼] 신부의 사목으로 교세가 크게 확장되면서 예산공소의 천주교 신자도 증가하자, 예산에 본당을 설립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특히 개성에서 이주하여 예산공소의 회장을 맡고 있던 윤창규[이냐시오] 회장은 자비로 6칸짜리 한옥을 짓고 성직자 영입을 준비하였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27년 예산본당이 합덕본당에서 분리되었는데, 당시 약 1,500명의 신자가 있었다. 예산 본당의 초대 주임은 합덕본당의 보좌였던 구천우[요셉] 신부였다. 윤창규 회장은 새 성당 신축에 적극 나섰고 막대한 재산을 헌납하였다. 그 기금을 바탕으로 1928년에 부임한 제2대 황정수 요셉 신부[1928~1943년 재임]가 1934년 현재의 성당 건물을 완공하였다. 1956년에 교육관을, 1963년에는 성모유치원을 신축하였다. 1966년 삽교본당이, 1977년 신례원본당이, 1988년 산성리본당이 분리되어 나갔다. 2000년 2월 명칭을 예산성당으로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예산 지역 천주교의 중심 성당이다. 내포 천주교 순교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여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왔다. 예산 성당에서 3개의 성당이 분리됨으로써 예산 지역에 천주교 신앙을 확산시켰다. 1963년에 개원한 부설 성모유치원을 지역 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운영하고 있으며, 각종 불우이웃 돕기와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현황]
1대 구천우 요셉 신부 이래로 현재 21대 김윤석 루카 신부로 이어지고 있다. 예산성당은 대흥의 대률공소, 대술의 송석공소, 신양공소, 신양의 귀곡공소, 시왕리공소를 거느리고 있으며, 명실상부한 내포 지역 천주교회 중심 성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부터 예산 지역의 중심 성당으로서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하는 등 지역 사회 천주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또한 성당과 사제관 건물은 아름답고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성당이다. 2004년 4월 1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