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088 |
---|---|
한자 | -證人 |
이칭/별칭 | 왕국회관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성준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정통 기독교와 주요 교리를 달리하는 19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신생 종파.
[개설]
여호와의증인은 1872년 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1852~1916]이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세운 국제성서연구회로 시작되었다. 종교의 명칭은 러셀의 후임자 조셉 프랭클린 러더퍼드(Joseph Franklin Rutherford)가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네이선 호머 노어(Nathan Homer Knorr)[1905~1977]는 성서학교를 세워 선교사와 지도자를 양성했고, 새로운 성서 번역을 주도하였다. 여호와의증인은 정통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와 예수의 신성(神性) 교리를 부정하고, 여호와를 유일한 ‘참 하나님’으로, 예수를 대속주(代贖主)로 믿는다.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세속적인 의식과 권위·관행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나 병역 의무를 거부하고, 수혈을 거부하며, 공공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공직을 맡지 않는다.
한국에는 1912년 선교사 R. R. 홀리스터 부부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하여, 강범식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여호와의증인 신자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은 대부분 천황숭배 거부 및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옥고를 치렀다. 그중 유명한 것이 1939년의 등대사사건이다. 한국전쟁 이후에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서 1970년대 이후 신도 수가 크게 늘어났다. 여호와의증인은 일반 기독교의 교회 건물에 해당하는 집회 장소를 왕국회관[Kingdom Hall]이라 하고, 신도 모임을 회중(會衆)[Congregation)이라 하며, 『파수대[The Watchtower]』, 『깨어라[Awake!]』 등 잡지를 전달하면서 방문 전도를 한다.
[현황]
한국의 여호와의증인 신자 수는 2014년 현재 10만 명을 약간 넘었다. 예산 지역의 여호와의증인은 1956년 4월 이봉금이 예산읍 예산리 509번지에서 전도하면서 시작되었다. 1985년에 신례원 창소리에 왕국회관을 세웠고, 1990년대 초에 대회리 형제고개에 왕국회관을 건립하였다. 2011년에 두 회관을 하나로 합쳐서 예산읍 석양리 133에 ‘여호와의증인 예산북부왕국회관’을 건립하였으며, 이어서 ‘여호와의증인 삽교왕국회관’도 건립하였다. 신도들은 개별 방문 선교 활동을 하며, 매주 일정한 시간에 거리 선교 활동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