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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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演劇 |
영어공식명칭 | theatrical art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희영 |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공연된 연극과 연출·연기를 하는 연극인의 단체 활동.
[개설]
일제가 한반도 점령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신극단을 공연을 하면서부터 예산 지역에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예산 지역에서는 신극단의 공연을 방해하고 일제의 감시에도 신극 활동과 창극 활동을 이어 갔다. 해방 이후 예산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연극 활동이 이루어지며 여러 극단이 창단되었다.
[변천]
연극을 가상의 진실이나 핵심적인 사고를 한 장소에서 구경꾼을 대상으로 연기자가 실연해 보인다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나라의 연극은 창극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일제는 1909년 전통 창극단들이 민족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고 해체하였다. 예산 지역에서 신극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923년 예산청년회에서 소비 절약을 선전하기 위해 “소인극을 연행하였다.”라는 기록과 1930년 조선형평사 예산지부에서 “동화가극 대회를 하였다.”라는 기록이다. 이후 일제가 침략의 정당화를 유도하기 위해 1932년 신극단 만경좌가 예산면에서 「동방의 빛」이라는 연극을 공연하려 하였다. 만주에서 한국인이 마적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살해되기 전 일본군에 의해 구제, 보호받는 내용이었다. 홍성에서 공연을 마쳤는데 예산농업학교 학생들과 예산 지역의 문인들이 공연을 방해하였고, 모두 검거되어 징역 1년에서 3년형을 언도받았다.
1936년 10월 박필래에 의해 130평[약 330㎡]의 예산극장이 개원하였고, 1939년 서울동양극장의 전속 극단 청춘좌와 호화선을 초대하여 연극 「정의의 복수」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후 일제의 철저한 감시에 의해 예산 지역에서 신극 활동은 물론 창극 활동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연극 활동이 이뤄지는데, 1950년 극단 고향이 창단되고 「고구려의 여명」이라는 작품이 공연되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방위군 예산지대의 연극단이 구성되어 활동하였다.
1960년대 일본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나온 박창식은 극단 태극좌를 창설하고 「윤봉길」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980년 예산문화원 연극단이 창설되어 「달팽이들의 연극」이 공연되었고 1987년 극단 소란이 창단되어 「빛은 멀어도」라는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1980년부터 예산 지역에서 연극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극단 소란뿐 아니라 극단 예촌이 창설되어 수많은 작품을 통해 예산 지역 주민들의 연극에 대한 열망을 채워 주었다. 예산 출신의 연극배우 최주봉과 충남연극협회 회장인 이승원 회장의 활동은 지역 연극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 지역의 연극은 개화기에 농촌계몽을 목적으로 지역 선각자들에 의해 싹트지만 일제의 탄압에 의해 꽃피지 못하였다. 일제는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극단을 창단하여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지역에서 반발이 거세었다. 해방 이후 비로소 예산 지역에서 연극이 꽃을 피우면서 꾸준히 극단이 등장하고 많은 작품들이 상연되었다. 극단 예촌에서는 우리의 창극을 현대에 맞게 각색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고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연극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아 수많은 초청 공연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