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당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454
한자 國賜塘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노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표윤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9년 - 「국사당보」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수록
관련 지명 오촌리 -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오촌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예당저수지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전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김만진|부인|암행어사
모티프 유형 유적 유래담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오촌리에 전해지고 있는 국사당보에 얽힌 이야기.

[개설]

「국사당보」예산군 오가면 노계리[지금의 오촌리]에 전해지고 있는 예당저수지 설치 전 국사당보에 얽힌 유적 유래담이다. 오가면 노계리광산김씨 집에 혼례가 있었는데, 혼례식날 밤 며느리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보를 쌓으라고 하였다. 며느리의 말을 전해 들은 집안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보와 수로를 설치하였다. 이후 옥토가 개간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신장리 사람들이 트집을 잡아 분규를 일으켰다. 마침 지나던 암행어사가 문제를 해결하니 사람들이 나라에서 준 보라 하여 ‘국사당보’라 부르게 되었다. 국사당보가 있던 곳에는 현재 예당저수지가 들어섰다.

[채록/수집 상황]

「국사당보」는 1999년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실려 있다.

[내용]

200여 년 전인 정조(正祖)[1752~1800] 2년 봄, 오가면 노계리광산김씨 집에 경사가 있었다. 큰아들 김만진이 장가를 든 것이다. 김만진의 부인은 광주노씨였는데, 첫날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나는 이곳 들을 맡고 있는 신령이다. 너는 복이 많은 여인이니 장차 부귀를 누리게 되리라. 내 오늘밤에 눈이 오게 할 터이니 눈 온 자리를 따라 수로를 내도록 하여라. 그러면 너희 집은 물론이고 마을전체가 흥하게 될 것이다.” 하고는 사라졌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깊은 밤이었다. 이제 막 혼례를 치른 열여덟 살 새댁은 수줍어서 망설였다. 하지만 하도 괴이한 꿈인지라 잠든 신랑을 깨워서 꿈 이야기를 하였다. 신랑 김만진이 날이 밝기를 기다려 대문 밖으로 나가 보니 과연 마당 앞에서부터 넓은 들 쪽으로 한 줄기 서리가 내려 있었다. 김만진은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곧장 말을 타고 서리 자국을 따라가 보니 오가들이 끝나는 국사봉 아래 무한천변까지 이어져 있었다. 김만진은 부모의 승낙을 얻어 대동회의를 열고 보 막는 일과 수로 내는 일을 협의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보와 수로 작업에 찬성을 하였고 이웃 동네에서도 찬성을 하였다.

다음 해 이른 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수로로 들어가는 땅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았다. 김만진의 부인인 노씨 부인은 앞장서서 매일 점심과 술을 하여 날랐다. 이리하여 보를 막고 십리가 넘는 수로를 완성하였다. 노씨 부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원리벌 옥토는 해마다 더 넓게 개간이 이루어졌다. 그 후 신장리 사람들이 마을 앞 국사봉 기슭을 지나는 수로를 트집 잡아 분규를 일으켰다. 때마침 일흥역을 지나던 암행어사가 문제를 잘 해결해 주니 사람들은 나라에서 준 보라 하여 ‘국사당보’라 불렀다. 김만진국사당보를 막던 때와 다름없이 성실하게 나랏일을 돌보아 마침내 벼슬이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김만진의 5대손 김준서도 곤양군수, 부산진방어사, 홍주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나라에 봉사하였다. 공조참판 부인이 된 노씨 부인은 82세의 수를 누렸다. 주민들은 국사봉 아래에 사당을 짓고 노씨 부인의 공적을 추모하여 왔으나 예당저수지가 만들어지던 때 수로를 부설하느라 사당을 헐고 말았다. 전에는 해마다 농사철이 되면 보를 보수하고 수로 손질을 하였다. 농악을 치며 동원을 알리면 농민들은 모두 가래나 삽을 들고 나섰다. 농악을 선두로 우선 국사봉에 가서 산신에게 제를 올리고 무한천변의 보에 가서 용왕제를 올린 다음, 사당에 가서 노씨 부인의 추모제를 지내고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모든 작업은 자진하여 협동으로 이루어졌다. 국사당보예당저수지의 완공과 더불어 현대식 관개시설로 변모하였다. 현재 예당저수지의 제방 자리가 바로 옛 국사당보 자리이고 당시의 십 리[3.93㎞]가 넘는 수로는 현재도 예당농지개량조합의 수로로 개량되어 이용되고 있다.

[모티프 분석]

「국사당보」예당저수지가 들어서기 전 설치되었던 국사당보에 얽힌 유적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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