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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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冷-玉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표윤명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9년 - 「냉전골의 옥녀」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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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향교말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 |
관련 지명 | 냉전탕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옥녀|구두쇠 영감|아버지 |
모티프 유형 | 지형 지물 유래담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의 향교말에 전해지고 있는 지형 지물 유래담.
[개설]
「냉전골의 옥녀」는 옥녀라는 착한 여인과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의 향교말 냉전탕의 유래가 담긴 지형 지물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냉전골의 옥녀」는 1999년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실려 있다.
[내용]
덕산면 사동리의 향교말이란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골짜기가 있고, 거기에 냉전탕이라는 우물이 있다. 냉전탕은 예로부터 약수탕으로 널리 알려졌다. 고려시대 덕산골에 큰 벼슬을 하였던 영감 집에 최씨라는 하인이 있었다. 최씨의 집은 원래 양반 집안이었으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가운이 기울어 최씨의 대에 이르러서는 남의 하인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최씨의 주인은 구두쇠로 널리 알려진 영감이었다. 착실하게 일을 한 최씨는 구두쇠 영감의 특별한 배려로 영감 댁 아래채에서 살게 되었다.
구두쇠 영감이 오십 줄에 들어서자 아내가 죽고 말았다. 그런데 최씨에게는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하인이었으므로 최씨의 딸도 구두쇠 영감 집에서 부엌일을 하는 신세였다. 비 오는 어느 날, 약사발을 들고 구두쇠 영감 방에 들어갔던 최씨 딸은 구두쇠 영감에게 겁탈을 당하였다. 딸의 배가 자꾸 불러오는 것을 보고 눈치챈 최씨는 딸을 다그쳤다. 그리고 구두쇠 영감에게 딸이 겁탈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구두쇠 영감은 최씨가 알고서도 모르는 척하자 아예 최씨의 딸을 후처로 삼았다. 그래도 최씨는 모르는 척하였다.
그럭저럭 10년이 흘렸다. 구두쇠 영감은 나이가 들면서 거동이 어려워지더니 마침내는 한쪽 몸을 못 쓰는 풍병에 걸렸다. 구두쇠 영감은 최씨의 딸에 의지해서만 거동을 할 수 있었다. 찬물로 목욕을 하면 고칠 수 있다는 의원의 처방대로 냉전골에 오두막을 짓고 구두쇠 영감과 최씨 딸은 아예 이사를 왔다. 착한 최씨 딸은 구두쇠 영감의 병을 고치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발과 양쪽 손을 주물러 주는가 하면 항상 몸을 냉수로 마찰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러자 한 달이 못 되어 구두쇠 영감은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거동도 자유로워졌다. 거동이 자유로워지자 구두쇠 영감은 집에 내려와서는 또다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를 하자 영감은 열흘이 못 되어 또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최씨 딸은 아버지와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구두쇠 영감을 냉전골 오두막으로 다시 옮겨 치료를 하기 시작하였다. 최씨 딸은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자 구두쇠 영감은 다시 회복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 10년 동안 오두막에서 살다가 죽었다. 구두쇠 영감이 죽자 재산은 최씨 딸의 것이 되었다. 최씨 딸은 아버지와 상의를 해서 광 속에 있던 곡식을 처분하여 냉전골에 집을 마련하였다. 그러고는 풍병에 걸려 병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방을 제공하는가 하면 곡식을 털어서까지 병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던 최씨와 딸이 모두 늙어서 죽자 밤이면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고 옥녀라 불리는 여인이 나와서는 냉전골을 한 바퀴 돌다가 사라졌다. 덕산온천 위쪽으로 자리한 냉전골에는 지금도 옥녀가 가끔 내려와 찬샘을 한 바퀴 돌다가 하늘로 사라지곤 하는데, 사람들은 옥녀를 최씨의 딸이라고 말하며 착한 여인으로 일생을 마친 최씨의 딸을 모두 칭송하였다.
[모티프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