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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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孝閣_孝誠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표윤명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9년 - 「쌍효각에 얽힌 효성」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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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쌍효각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인영원|성주배씨|인회배 |
모티프 유형 | 효자담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에 전해지고 있는 인영원 부부의 효에 얽힌 이야기.
[개설]
「쌍효각에 얽힌 효성」은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쌍효각(雙孝閣)에 전해지고 있는 효자담이다. 낙상리에 살던 인영원이라는 효자가 아버지의 삼년상을 마치고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는데, 인영원의 아들 역시 대를 이어 부모에게 효성을 다했다. 이후 낙상리에 인영원 부부의 효를 기리는 쌍효각이 세워졌다.
[채록/수집 상황]
「쌍효각에 얽힌 효성」은 1999년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실려 있다.
[내용]
덕산면 낙상리에 부부의 효를 칭송하기 위해 세워진 쌍효각이 있다. 쌍효각에는 인영원 부부의 극진한 효행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인영원은 언행이 남다른 아이였다. 인영원이 부모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며 공양하는 태도를 보고 사람들은 크게 경탄하였다. 세 살 때 부친상을 당해서는 지나치게 통곡하여 조문을 온 사람들도 함께 슬퍼하였다고 한다. 삼년상을 마치고 집안 형편이 어렵게 되자 집안을 돌보는 일이 인영원에게로 돌아왔다. 인영원은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품을 팔아 쌀을 구하였고 반찬으로 먹도록 밭에 채소와 나물도 심었다. 집안일은 어머니와 상의하고 어머니가 원치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또 어머니가 음식을 적게 먹으면 따라서 적게 먹으니 보는 사람들이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며 칭송하였다.
스무 살에 성주배씨를 아내로 맞아서는 홀어머니를 더욱 지성으로 모셨다. 아내 역시 시어머니 모시기를 극진히 하고 언행이 남편 못지않게 바르니 효부라 이름나게 되었다. 1877년[고종 14] 겨울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인영원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약을 구하고 아내는 약재를 정성껏 달여 드리니 어머니의 병환이 차도가 있었다. 또한 정결한 곳에 제단을 쌓고 비비람을 무릅쓰며 어머니의 쾌유를 빌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아들과 며느리의 효성을 칭찬하고 갔는데 그 이후로 병환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 뒤 매년 정초에는 특별히 제단에 가서 제물을 차려 놓고 치성을 드리니 어머니가 17년이나 더 살았다.
부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매우 애통해하였다. 그러다 쇠약해진 부인이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인영원은 혼자서 삼년상을 극진히 치렀다. 그 뒤 인영원이 세상을 뜨자 아들 인회배가 8년간 삼년상을 치렀다. 인영원의 묏자리는 명풍(名風) 노병용이 잡아 주었는데 인영원이 살아생전에 기도를 드리느라 쌓았던 제당 자리였다. 인영원의 효성스러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인영원은 숭정대부(崇政大夫)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부인 배씨는 정경부인에 증직(贈職)되었으며, 덕산면 낙상리에 부부 쌍효각이 세워졌다. 인영원은 1850년(철종 1)부터 1906년(고종 43)까지 살았으며, 본관은 교동이고, 자는 여행, 호는 삼산, 시호는 효정이다.
[모티프 분석]
「쌍효각에 얽힌 효성」은 낙산리 쌍효각에 전해지고 있는 효자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