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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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표윤명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9년 - 「열녀바위」 예산문화원에서 발간된『예산의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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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산성리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
관련 지명 | 열녀바위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신동지|아들|열녀 |
모티프 유형 | 열녀 설화|지형 지물 유래담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에 전해지고 있는 열녀바위에 관한 설화.
[개설]
「열녀바위」는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에 전해 내려오는 열녀바위에 얽힌 이야기이다. 신동지라는 사람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이 저수지에 빠져 죽자 며느리가 남편을 따라 저수지 위 바위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였다. 이후 사람들은 며느리가 뛰어내린 바위를 ‘열녀바위’라 불렀다.
[채록/수집 상황]
「열녀바위」는 예산군 산성리의 자연 마을인 암하리 주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1999년 예산문화원에서 발간된 『예산의 설화』에 실려 있다.
[내용]
지금의 예산읍 산성리 세광아파트 아래쪽[옛 지명 암하리]에 병풍 같은 바위와 저수지가 있었다. 병풍 모양의 바위를 사람들은 열녀바위라 불렀다. 바위 아래에 있는 저수지는 사시사철 금오산을 품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옛날에 바위 아래쪽에 신동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신동지는 바위를 둘러싼 아름다운 저수지를 일컬어 ‘고산 아래에는 단애장호(斷崖長湖)가 있어 그 풍광의 아름다움이 소적벽(小赤壁)에 어깨를 나란히 한다.’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광에 사로잡힌 신동지는 바위 위에 정자를 짓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신동지의 외아들이 어느 날 저수지를 거닐다 돌풍에 갓이 날아가자 저수지에 떨어진 갓을 꺼내려다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늙은 부모와 아들의 젊은 아내는 슬픔에 잠겼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며느리는 남편을 그리다 여필종부(女必從夫)라며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이후 사람들은 병풍 바위를 ‘열녀바위’라 불렀다.
아들과 며느리를 잃어 실의에 잠겨 있던 신씨 내외에게 어느 날 승려가 찾아왔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 집은 저 바위와 저수지 물 때문에 불길하니 저수지를 허물어 물을 빼면 좋은 기운이 찾아올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승려의 말은 풍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왜냐하면 신씨의 집터는 봉등혈맥, 즉 등잔불이 켜져 있는 형국의 명당자리였던 것이다. 등잔불을 걸어 놓은 자리에 계속 불이 켜져 있으려면 기름 그릇처럼 저수지 물이 말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풍수를 모르고 한 승려의 말에 신씨 내외는 저수지를 텄다. 저수지 물이 마르자 신씨 집안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1930년대에 저수지 아래로 제사 공장이 들어서면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를 복원하였으나 현재는 주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저수지는 사라지고 바위만이 일부 남아 있는 상태이다.
[모티프 분석]
「열녀바위」는 남편이 죽자 아내가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여인의 정절을 중요시 여긴 열녀 설화이자 열녀바위라는 이름이 생긴 연유를 밝힌 지물 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