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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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要路院夜話記 |
이칭/별칭 | 요로원기,요로원야화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금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50년 - 「요로원야화기」 저자 박두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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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33년 - 「요로원야화기」 저자 박두세 사망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78년 - 「요로원야화기」 집필 |
배경 지역 | 음봉면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
배경 지역 | 금곡리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
성격 | 서사적 수필|고전소설 |
작가 | 박두세 |
[정의]
예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인 박두세 가 부패한 사회상을 비판한 내용을 담아 쓴 서사적 작품.
[개설]
박두세 (朴斗世)[1650~1733]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사앙(士仰)이며 예산군 대흥면 금곡 사람이다. 1650년(효종 원년)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에서 아버지 박율(朴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호는 동암(東岩)인데, 집 뒤에 있는 선바위 이름인 동암바위에서 딴 호이다. 박두세는 성장기에 예산군 대흥면 금곡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1678년(숙종4)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집필을 하였다.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였고, 의금부도사, 진주목사를 거쳐 지충추부사에 이르렀다. 문장에 능하였으며 운학(韻學)에도 매우 밝았다. 작품으로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삼운보유(三韻補遺)」,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가 있다. 묘소는 예산군 대흥면 갈신에 있다.
[구성]
「요로원야화기」는 요로원의 주막을 배경으로 하여 하룻밤 동안 주인공인 손님[나]과 서울 양반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려 내는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처음 부분과 끝 부분, 일부 설명을 제외하고는 손님과 서울 양반의 대화체로 구성되었다.
[내용]
과거에 실패한 시골 선비가 요로원 주막에서 서울 양반을 만나 대화로써 당대의 세태와 정치제도를 풍자하는 것이 「요로원야화기」의 주요 내용이다. 사건 전개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발단-초라한 행색의 선비[나]가 요로원 주막에서 서울 양반[손님]과 만난다. 전개-거만한 서울 양반을 속이기 위하여 어리숙한 시골 사람으로 행세하며 서울과 시골 양반의 풍속을 해학적으로 풍자한다. 위기-서울 양반이 속은 걸 알고 부끄러워하고 서로 한시를 지어 화답한다. 풍월 화답 사이로 학문과 수양하는 태도와 부패한 과거제도를 비판한다. 절정-뜻이 통하는 친구가 되어 사색당파(四色黨派)로 분열된 정치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며 밤을 지새운다. 결말-날이 밝아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진다.
[특징]
「요로원야화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엮어 간 서사적 구조가 특이하다. 실제 경험을 펼침으로써 관념적이고 허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사실성을 구축하고, 하룻밤 사이의 정경을 대화로 그려 냄으로써 형식적 파격을 이룰 수 있었다. 학문하는 자세와 양반의 허구성, 사회제도의 문제점과 당쟁 비판을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대화 속에 담아냄으로써 객관성을 구축한 새로움은 물론, 해학과 풍자를 뛰어난 문장으로 구현한 것 또한 눈여겨볼 요소이다.
[의의와 평가]
「요로원야화기」는 수필 문학으로 볼 것인가, 소설 문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끝나지 않은 작품이다. 고전소설이 충분히 정착되기 이전인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용재총화(慵齋叢話)」나 「어우야담(於于野談)」과 같이 야담류의 서사적 구조를 지닌 수필로 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요로원야화기」는 문학 갈래 구분의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고전소설의 발전 단계에 보이는 서사적 구조를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야담류가 지니지 못한 창작성, 표현 기법 등에서 18세기 소설의 바탕을 이룬다고 평가된다. 소설은 15세기 후반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로 시작되었으나 대중과 유리되었고,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이 나온 것이 17세기였다. 이때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소설이 시작되었고, 김만중(金萬重)[1637~1692]의 소설이 17세기 후반에 나오면서 소설은 대중 속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요로원야화기」는 『홍길동전』과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잇는 소설 작품으로 볼 때 소설 문학의 발전 과정이 분명하게 규명될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