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천위제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1241
한자 不遷位祭祀
영어공식명칭 Immutable Position Ritual
이칭/별칭 혈식군자(血食君子)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창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례
의례 시기/일시 사망한 날 당일

[정의]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신위를 영원히 모시는 것이 허락된 조상에게 후손들이 지내는 제사.

[개설]

충청남도와 대전광역시에는 48위의 불천위(不遷位)가 있다. 불천위는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아 나라에서 신주를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락한 사람의 신위를 말한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나라에서 인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로 문정공(文貞公) 맹사성(孟思誠)[1360~1438], 신창군(新昌君) 맹석흠(孟碩欽)[1429~?], 정양공(靖襄公) 심구령(沈龜齡)[1349~1413], 문정공(文正公) 이간(李柬)[1677~1727],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 충민공 이봉상, 문장공(文莊公) 홍가신(洪可臣)[1541~1625] 등 일곱 명이 있다.

이 중 맹사성, 이간, 홍가신불천위제사 외에 지역 유림이 숭모제(崇慕祭)를 봉행(奉行)하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은 탄신제(誕晨祭), 기신제(忌晨祭)를 별도로 봉행하고 있다. 불천위제사는 출중한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종친 간 정을 나누는 과정이다. 불천위제사는 문중 구성원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능이 있으며, 주변의 이목이 쏠리는 까닭에 격식이 엄격하다.

[신당/신체의 형태]

불천위 7위 중 충민공 이봉상 장군은 별도의 사당이 없으며, 안채에 감실(龕室)[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장(欌)]을 두고 신주를 모시고 있다. 신창군 맹석흠은 사당이나 감실이 없다. 충민공과 신창군을 제위한 5위는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있다. 사당은 맞배지붕 형태이고, 정면 2칸 측면 1칸 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사당은 종가(宗家)의 동쪽에 있다. 이는 동쪽이 생명의 근원이며 해가 뜨는 방향이어서 조상이 가장 먼저 햇볕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절차]

불천위제사는 일반 기제사와 같은 절차로 지내며, 배위와 함께 모시는 합설(合設)이다. 제사는 사당에서 신주를 제청(祭廳)으로 모시는 출주-참신-강신-초헌-아헌-종헌-유식-합문-계문-사신-철찬 순으로 진행된다. 제청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문이 없어 합문, 계문 절차를 생략하거나 병풍으로 가린다.

불천위제사는 큰 제사이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준비하고 적(炙)은 날고기를 사용하는 종가(宗家)가 있어 불천위를 혈식군자(血食君子)라고도 한다. 제사가 끝나면 음복상(飮福床)이 나오는데 종손과 헌관들은 독상, 이하 참사자(參祀子)들은 겸상을 받고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 후손들을 위해 제사음식을 싸서 보내는 봉게(奉揭)를 끝으로 불천위제사가 마무리된다.

[현황]

불천위 기일은 음력으로 행하며, 시간은 일몰 이후 봉행이 원칙으로 사망한 날 당일 자시(子時)부터 준비하며 축시(丑時)[오전1時]에 지냈다. 새벽에 지낸 이유는 혼(魂)이 음도를 따르므로 고요한 시간에 거동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사(參祀)[제사에 참례함]하는 후손들이 경향 각지에 거주하고 있어 최근엔 편리한 대로 제사 시간이 변화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창선, 『쉽게 풀어쓴 상례와 제례』(자유문고, 1999)
  • 김미영, 『불천위 제례와 사회문화적 의미와 역할』(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6)
  • 인터뷰(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이간 선생 증손 이준세, 남, 96세, 2018. 6. 15.)
  • 인터뷰(아산시 실옥동 전 신창맹씨 대종회장 맹주승, 남, 83세, 2018. 6. 25.)
  • 인터뷰(아산시 용화동 덕수이씨 충무공파 회장 이종천, 남, 84세, 2018. 6. 27.)
  • 인터뷰(아산시 남양홍씨 대종회 임원 홍승균, 남, 54세, 2018. 6. 27.)
  • 인터뷰(아산시 배방읍 중리 신창맹씨 신창군파 후손 맹정호, 남, 53세, 2018.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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