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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청년 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23
한자 和順靑年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8년 1월 29일연표보기 - 화순 청년 동맹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2월 26일 - 화순 청년 동맹 능주 지부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3월 25일 - 화순 청년 동맹 춘양 지부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6월 3일 - 화순 청년 동맹 도암 지부 설립
최초 설립지 화순 청년 동맹 - 전라남도 화순군
성격 청년 운동 단체

[정의]

1928년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설립된 사회주의 계열 청년 운동 단체 연합체.

[변천]

1924년 4월 서울에서는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 단체들이 모여 조선 청년 총동맹을 결성했다. 화순군에서도 4월에 능주 청년회와 동면 청년회, 1926년 6월에 화순 청년회가 조선 청년 총동맹에 가입했다. 그러나 1927년까지도 전라남도 화순군의 사회주의 청년 단체들을 묶은 단일 조직은 없었다.

1927년 말 조선 청년 총동맹은 각 군의 청년 단체를 하나의 청년 동맹으로 통합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화순군의 사회주의 청년 단체들은 화순 청년 동맹을 결성했고 1928년 1월 29일 창립 대회를 개최했다.

조선 청년 총동맹은 각 군에 1개의 청년 동맹을 결성토록 하며 면 단위의 지부 결성을 결정했는데 화순 청년 동맹도 이런 결정에 따랐다. 이에 1928년 2월에는 능주 지부, 3월에는 화순 지부와 춘양 지부, 1928년 6월 도암 지부와 외남 지부를 함께 설립하려 했으나 외남 지부만은 경찰의 저지로 실패했다.

지부는 대개 기존의 청년 조직을 흡수하여 재조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능주 지부는 능주 갑자 청년회능주 노농 청년회의 조직을 흡수했던 것으로 보이고, 화순 지부는 이미 사회주의 청년들이 장악한 화순 청년회를 개칭한 듯하다. 외남 지부도 1925년께 결성된 외남 청년회를 재조직하려 했던 것 같은데 외남 청년회는 1927년 2월에 이미 조선 청년 총동맹에 가입을 신청한 상태였다. 다만 1924년에 조선 청년 총동맹에 가입했던 동면 청년회를 기반으로 한 동면 지부 결성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1928년 8월 고려 공산 청년회 사건으로 화순군에는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 선풍이 불었다. 이듬해 1929년 2월에는 관련자 검거 여파로 화순 청년 동맹의 간부들이 체포됐다. 11월 이후에는 조선 청년 총동맹의 지도부가 광주 학생 운동으로 검거되는 등 타격을 입었고 남은 지도부에서도 내분이 격화됐다. 결국 조선 청년 총동맹은 1931년 사실상 소멸되는데 화순 청년 동맹도 그 영향으로 유명무실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화순 청년 동맹은 화순군 사회주의 청년 단체의 통합과 동시에 전국적 관심사였던 현안들인 신간회·형평사·노동·여성 등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 아울러 능주 공립 보통학교의 월사금 체납 학생에 대한 체벌과 같은 지역 현안을 공론화했고 1928년 4월 능주 지부의 한글 보급 운동처럼 이전의 청년회와 같은 야학 운동도 계속 전개했다.

[의의와 평가]

화순 청년 동맹은 비록 상급 단체인 조선 청년 총동맹의 지시로 결성됐지만 이전까지 면 단위로 활동하던 청년 단체를 하나로 규합하려는 본격적인 시도였다. 실제로 지부 결성 또는 결성 시도가 있었던 화순면·능주면·도암면·춘양면·외남면의 5개 면에서는 동맹이 뚜렷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지부 결성이 완료된 면은 당시 화순군의 17개 면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일정한 한계도 가지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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