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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13
한자 靑年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광철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청년들이 일으켰던 사회 운동.

[화순 지역 청년 운동의 개설]

3·1 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통치 속에서 결사의 자유가 일부 허용되며, 화순군에는 1920년 이후 다양한 청년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청년 단체는 1920년대 중반까지 화순면·능주면·동복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는 1908년과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통합되기 이전 옛 지역들의 분절적인 사회 조직이 지속된 결과였다. 이러한 경향은 1925년을 전후로 사회주의 청년 운동이 부상하면서 점차 해소되었다.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은 1920년대 전반기에는 계몽주의적 성향, 1920년대 후반기에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은 지역 농민 및 노동 운동에도 강한 영향을 끼쳤으나 1920년대 말 일제의 탄압으로 와해되어 침체기에 빠졌다.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은 1920년 화순 청년회로 시작된다. 초기에는 박재순·박현경 등 유력한 지주와 명사들의 입김이 강하였다. 하지만 1926년 주재학·조병철 등 사회주의 청년들이 청년회의 운영을 주도하면서 이념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후 주재학·조병철 등은 1926년 화순 농민 조합과 화순 노동조합의 결성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1928년 후반 사회주의자 검거 선풍 속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능주 지역의 청년 운동]

능주 지역은 1920년대 화순군 능주면·도곡면·한천면·도암면·춘양면·청풍면·송석면·도림면의 8개 면을 일컫는다. 조선 시대에는 능주목이 관할했던 지역이다.

능주 지역은 화순군 전체 면적의 60%에 달했고 1920년대 화순군 인구의 50% 이상이 거주했던 곳으로, 화순 지역 전체에서 여러모로 영향력이 큰 곳이었다. 능주 지역의 청년 운동은 대체로 능주목의 옛 지역을 활동 무대로 삼아 전개되었다.

능주 지역 청년 운동은 1920년 능주 청년회로 시작되었다. 계몽주의적 성향을 띤 초기의 능주 청년회는 1924~1925년 사이에 보수적 성향의 갑자 청년회와 사회주의 성향의 능주 노농 청년회[능주 노농회의 전위 조직]로 양분됐다. 이후 갑자 청년회도 1928년까지 사회주의 청년들이 장악함에 따라 능주 지역에서 사회주의 청년 운동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사회주의 청년 운동은 이후 능주 농민회·능주 노동회·능주 소작권 피박탈자 동맹·능주 농민 조합·능주 노동조합 등 각종 사회 운동을 지원하거나 주도했다. 이러한 청년 운동은 1928년 화순 청년 동맹으로 결집되었다.

[동복 지역의 청년 운동]

동복 지역은 당시 동복면·내북면·외북면·이서면·내남면·외남면의 6개 면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 동복현을 구성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동복 지역의 청년 운동은 1920년 동복 청년회로 시작된다. 동복 청년회는 처음부터 화순 지역 및 능주 지역보다 지역 유지들의 친목 단체 성격이 강하였다. 또한 1920년대 화순 지역 및 능주 지역의 청년회가 이념적 분화를 겪었던 것과 달리 활동을 중단하였다.

이후 동복 지역에서는 두드러진 청년 운동이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외남면에서만 1925년 청년회 결성이 이루어지고 그 영향으로 이듬해 외남 농민회의 출범을 보게 되었다.

[연합 조직의 결성과 청년 운동의 쇠퇴]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은 1928년 화순 청년 동맹의 결성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화순 청년 동맹은 상급 단체인 조선 청년 총동맹의 방침에 따라 화순군의 대표 단체로 결성된 것이지만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 청년 단체들의 연대 노력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였다.

화순 청년 동맹의 출범과 함께 각 면의 청년 단체들은 지부 형태로 화순 청년 동맹의 산하 단체로 흡수되었는데 능주 노농 청년회갑자 청년회가 능주 지부로 재편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화순 청년 동맹은 1928년 한 해 동안 능주 지부 외에 화순 지부·춘양 지부·도암 지부를 결성했고 외남 지부의 결성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해 중반부터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고 상급 단체인 조선 청년 총동맹 지도부가 내홍(內訌)까지 겪으면서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은 쇠퇴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은 지역 전체 사회 운동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실제로 초기부터 청년 운동이 강세를 보인 화순 지역 및 능주 지역에서는 농민과 노동 운동이 활발했던 반면에 보수성이 강했던 동복 지역은 이후의 사회 운동에서도 침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처럼 청년 운동이 지역의 사회 운동을 견인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큰 반면에 지나치게 청년 운동에 의존적이었던 것은 당시 화순 지역의 사회적 역량이 지닌 한계이기도 했다. 1920년대 말 청년 운동 간부들의 검거와 탄압으로 화순 지역의 사회 운동이 침체기를 겪게 된 것은 화순 지역의 청년 운동이 지닌 역할과 한계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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