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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 노농 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21
한자 綾州勞農靑年會
이칭/별칭 노농 청년회,능주 노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최초 설립지 능주 노농 청년회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성격 청년 운동 단체

[정의]

1920년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설립된 노동자·농민 단체.

[변천]

능주 노농 청년회은 원래 능주 무산 청년당[무산 청년당]이라는 명칭으로 발족할 계획이었다. 당시 무상 청년당은 ‘무산 대중이 해방되는 신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명칭과 설립 목적의 과격성을 들어 단체 결성을 불허함에 따라 부득이 능주 노농 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러나 무산 청년당의 창립 회원들이 능주 노농 청년회의 창립을 이끈 점으로 보아 여전히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능주 노농 청년회를 이끈 조도기·주응조·주준환이 당시 능주 지역의 대표적 사회주의자들이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창립 당시 경찰은 능주 노농 청년회에 능주 노농회와의 통합을 요구했다고 한다. 능주 노농회는 1924년 1월부터 활동해 온 단체로 역시 사회주의 계열의 단체였고 실제로 두 단체간 활동가들이 중복되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능주 노농회는 1926년 4월 능주 농민회능주 노동회로 분화되기 전까지 별도의 단체로 유지되었다. 반면에 능주 노농 청년회는 이 노농회의 전위 정치 조직에 가까웠다.

능주 노농 청년회는 1928년 초엽에 이르면 기록상 활동의 흔적이 사라진다. 1928년 1월에 화순 청년 동맹이 결성되고 산하 조직으로 같은 해 2월에 능주 지부가 결성되는데 능주 노농 청년회가 사실상 화순 청년 동맹 능주 지부로 개편된 데 따른 현상일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능주 노농 청년회의 활동은 다분히 전국적 사안의 지역 사회 전파 및 공감대 확산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25년 11월 능주 노농 청년회의 임시 총회에서 논의된 사안은 도초도 소작 쟁의 문제, 도산 서원 재임의 소작인 태형(笞刑) 사건이었다고 한다.

활동의 상당 부분은 자매 조직인 능주 노농회와 보조를 같이했다. 농민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야학 개설 때 능주 노농 청년회는 교사를 제공하고 재정적 후원은 능주 노동회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능주 지역에서 다소 생소했던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지식인 운동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1926년 1월 능주 노농 청년회가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인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학살 7주년을 맞아 강연회를 개최하려고 했던 점이 그런 사례다.

[의의와 평가]

능주 노농 청년회는 능주 노농회의 전위 조직으로 이념적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야학 외에 지역 사회로 활동 기반을 넓히려는 사회 운동의 사례는 적었다. 그러나 능주 노농 청년회가 비슷한 성향의 청년 단체와의 제휴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주목된다. 1926년 2월 화순 청년회갑자 청년회와 3단체 발기 신년 연합 간친회를 개최했던 것이 그것이다. 화순 청년회갑자 청년회는 사회주의 성향의 회원들이 상당 부분 운영권을 장악한 상태였다. 같은 사회주의 성향의 단체 간 제휴이기는 하나 능주 지역 청년 단체가 화순군과 연대하려 했던 점도 주목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실제 1928년 화순 청년 동맹의 결성으로 본격화되지만 그보다 2년 앞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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