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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동면 경찰 지서 무기고 탈취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51
한자 和順東面警察支署武器庫奪取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연표보기 - 화순 동면 경찰 지서 무기고 탈취 사건 발생
발생|시작 장소 화순 동면 경찰 지서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성격 사건

[정의]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일부 시위대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경찰 지서의 무기고에서 총기와 탄약을 확보하고 광주로 돌아가 신군부의 계엄군에 저항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80년 5월 21일 광주 지역에는 계엄군의 발포 소식이 삽시간에 시내 전역으로 전해졌다. 계엄군의 발포 소식을 접한 시민들과 시위대는 자기 방어 수단으로서 무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시민들과 시위대 중 일부는 인근의 화순군에서 필요한 무기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화순 읍내에 진입했다.

[경과]

차량에 분승하고 너릿재 터널을 넘어 화순 읍내로 온 시위대가 모두 무장의 직접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위대의 상당수는 광주 지역의 상황을 외부에 직접 전달하고 시위 참가를 호소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화순 군민들이 시위대를 따라 광주로 향했다.

그러나 광주 시내에서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 사실에 격앙했던 시위대는 적극적인 무장을 위해 화순 지역을 택한 것이기도 했다. 화순군은 경찰 관서의 경계가 비교적 허술한 상태였고 화순 탄광에는 발파 작업이 잦은 만큼 폭약류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작용하였다.

시위대 중 일부는 오후 1~2시 사이에 화순군 동면 경찰 지서로 들이닥쳤다. 당시 지서에는 광주의 시위 진압에 동원되어 경찰관 1명만이 지서를 지키고 있었다. 시위대는 지서에 딸린 무기고의 자물쇠를 부순 뒤에 총기와 탄약을 꺼내 무장했다. 당시 시위대가 실어낸 무기는 경기관총, 카빈 및 M1 소총, 탄약 등이었다. 시위대는 무장을 마친 뒤에 다시 광주 지역으로 이동했다.

[의의와 평가]

화순군 동면 경찰 지서 무기 탈취 사건은 경찰의 관점에서는 무기의 탈취였지만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성격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의 하나였다. 신군부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총격과 폭력에 맞서 시민이 직접 자위적 행동을 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민군의 형성과 활동은 광복 후 민주화 운동에서 사실상 최초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전남 대학교 5·18 연구소 증언 자료(당시 용접 노동자 김용균, 남, 만 54세, 1989. 4.)(http://altair.chonnam.ac.kr/~cnu518)
  • 전남 대학교 5·18 연구소 증언 자료(화순 우체국 직원 문관, 만55세, 1989. 7.)(http://altair.chonnam.ac.kr/~cnu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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