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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 유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35
한자 念齋遺稿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42년[추정] - 『염재 유고』 필사
성격 문집
저자 송태회
권책 7권 3책

[정의]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화순 출신 한문학자이자 서화가인 염재 송태회의 미간행 필사본 문집.

[저자]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호가 염재(念齋), 염재거사(念齋居士), 염재(恬齋), 염와노부(恬窩老夫), 호산(壺山)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한문학자이자 서화가이다. 숙부인 사호(沙湖) 송수면(宋修勉)[1847~1916]의 제자로 16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22세에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909년 7월 『대한 매일 신보』 기자로 잠깐 동안 근무하였으며, 1920년 고창으로 이거하여 고창 고등 보통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1922년부터 31년까지 조선 미술 전람회에 서예에 2회 입선하였으며 문인화 부문에서 6회 입선하면서 화단에서 활동하였다. 고암 이응노(李應魯)[1904~1989]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매천 황현, 의재 허백련, 위창 오세창 등과 교유하였다.

『연화 서첩(蓮花書帖)』, 『임지 소희첩(臨池小戱帖)』, 『금석 유법첩(金石遺法帖)』, 『육서 유묵 의필첩(六書遺墨意筆帖)』 등의 서첩과 화첩을 다수 남겼다.

[형태/서지]

『염재 유고』는 7권 3책으로, 미간행 필사본이다.

[편찬/간행 경위]

『염재 유고』는 미간행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필사 시기는 1942년 염재가 세상을 떠난 직후로 보인다.

[구성/내용]

『염재 유고』 권1에는 소(疏), 서(書), 변(辨), 서(序), 기(記), 발(跋), 명(銘), 비(碑), 상량문(上樑文), 제문(祭文), 애사(哀詞) 등 58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이형립에게 보내는 편지[寄李炯立書]」는 이형립에게 시, 서, 화의 예술에 대한 담론의 내용이 담겨 있으며, 「성산기(聖山記)」는 1926년에 성산을 그린 작품을 남겼을 때 함께 지은 기문인데, 고창 고등 보통학교 교사 본관 낙성식 때 고창의 역사와 산천의 아름다움을 글로 지은 것이다. 「동계기(東溪記)」도 구례에서 은거했던 박승혁(朴勝奕)에 대한 글로 그에게 10폭 서예 작품을 쓰고 8폭 사군자 그림을 그려 주면서 썼던 기문이다. 이외에도 「제죽수이십영화병(題竹樹二十詠畵屛)」, 「제일화쌍접도기김지산(題一花雙蝶圖寄金芝山)」 등 그림과 함께 지은 글들이 실려 있어 매우 흥미롭다.

권2에는 『중향시초(衆香詩草)』, 「동유시초서(東遊詩草序)」, 『동유시초』 권1~권3과 발 등 154편이 수록되어 있다. 『중향시초(衆香詩草)』에는 「단발령(斷髮令)」, 「금강수(金剛水)」 등 약 2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동유시초(東遊詩草)』에는 「지장암(地藏菴)」, 「제금강시권후(題金剛詩卷後)」 등 약 10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3권에는 23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행무유흔(杏廡遺痕)』과 논(論) 36편이 실려 있는데, 『행무유흔(杏廡遺痕)』에는 「명명덕잠(明明德箴)」, 「이용후생론(利用厚生論)」, 「존경각명(尊經閣銘)」과 같은 글들이 실려 있다.

권5에는 「박추당 화백에게 주다[贈朴秋堂畵伯]」, 「모란 그림에 화제를 써서 임학영 교장에게 주다[題牧丹贈林鶴榮校長]」, 「백양산 송만암 주지가 박영호가 지은 팔승 시를 나에게 보이며 화답을 요구하다[白羊山宋曼庵住持以朴映湖所作八勝詩示余要和]」 등 약 시 202편이 실려 있으며, 권6에는 서(序), 중건기(重建記), 권두언(卷頭言), 비명(碑銘), 축사(祝辭) 등이 30편 실려 있고, 권7에는 행장록이 288편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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