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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의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925
한자 出産儀禮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집필자 한미옥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서 행해지는 출산에 관련된 각종 의례 행위.

[개설]

출산 의례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따르는 의례로, 출생 의례라고도 한다. 그런데 출생은 산모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이러한 절차를 포함하는 의미에서 출산 의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출산 의례에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의례들, 즉 태몽부터 태중 금기와 안산법과 같은 출산 전 의례와 출산 당시에 행해지는 의례, 그리고 백일 등 출산 후에 이어지는 출산 후 의례를 모두 포함한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 출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는 화순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기자 의례도 현재는 의학 기술의 발달로 과거보다 훨씬 약화된 채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백일이나 잔치는 잔치의 장소가 집에서 상업화된 장소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활발히 행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절차]

1. 산전(産前) 의례

산전 의례는 자식 낳기를 바라는 기자(祈子) 행위로부터 잉태의 징후를 보여주는 태몽과 태아의 성별을 미리 점쳐보는 태아 예지법, 임신 중의 금기, 유산 방지법, 순산을 위한 안산법 등 잉태를 전후해서부터 출산 직전까지의 여러 가지 의례들을 말한다.

1) 기자 의례

기자 의례는 결혼한 부부가 자식을 갖지 못한 경우에는 물론 아들을 낳지 못한 때에 거행되는 의례를 의미한다. 특히 전통 사회에서 아들은 제사권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아들을 소망하는 기자 의례는 더욱 다양하게 행해졌다. 화순 지역에서 행해지는 기자 의례 중 가장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양상은 명산대찰을 찾아가 비손하는 것이다. 또 조그만 작두를 만들어 허리춤에 차고 다니거나 잠자는 요 밑에 도끼를 만들어 깔고 자기, 삼신에게 공들이기, 아들 낳은 집 산모의 속옷 훔쳐 입기, 금줄에 끼어 있는 고추를 훔쳐 먹거나 몸에 차고 다니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기자 의례는 지역별·개인별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현재는 의학의 발달로 속신적인 의미가 강한 기자 의례는 상당히 약화되어 행해지고 있다.

2) 태몽(胎夢)

태몽은 아이의 출산을 예지하는 꿈으로, 이를 통해 아이의 성별이나 성격을 예측하기도 한다. 태몽을 통해 아이의 성별을 예지하는 것은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 전통 사회에서 널리 행해졌었는데, 그러나 의학이 발달해 아이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태몽은 여전히 미래의 아이의 성별을 예측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화순 지역에서는 대체로 꿈에 ‘대맹이[구렁이]’가 보이면 아들을 낳고, 뱀 중에서도 꽃뱀을 보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 조개의 경우도 큰 것이면 아들이고 작은 것을 보면 딸을 낳는다고 믿으며, 달걀·물고기·애호박·오이 등을 보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 태몽은 일반적으로 임산부 당사자가 꾸지만 남편이나 시어머니 등 가족들이 대신 꿔주기도 한다.

화순군 백아면 송단리 송단 마을 신옥란의 경우, 아들 태몽으로 큰 뱀을 보았다고 한다. 집 안에 큰 뱀이 보이자 손으로 뱀을 몰아 방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그 후에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딸의 태몽으로는 큰 소를 보았는데, 송아지가 보일 경우에는 아들이라고 한다. 청풍면 청용리 청용 마을의 조경순은 아들의 태몽으로 소 꿈을 꾸었는데, 이는 시어머니가 꾼 꿈을 조경순에게 이야기해 준 것이라고 한다.

3) 태중 금기(胎中禁忌)

임신부는 임신 중에 행동이나 먹는 음식에 대한 많은 금기가 있다. 음식에 대한 금기 중 대표적인 것은 오리 고기나 너구리 고기, 토끼 고기, 꿩, 고라니 고기 등을 먹지 않는 것이다. 오리 고기를 먹으면 아이의 손발이 오리발처럼 한 데로 엉겨 버리고, 오리걸음을 걷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금기시하며, 너구리 고기를 먹으면 손가락 사이가 붙고, 토끼 고기를 먹으면 아이의 눈이 빨갛게 되고 귀가 뒤쪽으로 붙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꿩고기를 먹으면 아이가 꿩 소리를 낸다고 하며, 고라니 고기를 먹으면 고라니처럼 된다고 하여 역시 먹지 못하게 했다.

화순읍 앵남리 앵무 마을의 강옥순에 의하면 아는 사람이 임신 중에 오리 고기를 먹었는데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도 침을 잘 흘렸다고 한다. 또 임신 중에 고라니 고기 역시 먹지 못하게 하는데, 이 고기를 먹은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귀가 꼭 고라니 같았으며 10세가 되기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다가 결국 죽었다고 한다. 염소 고기 역시 금기시 하는 음식의 하나인데, 염소 고기를 먹은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아기 역시 이레를 넘기지 못하고 죽은 경우를 보았다고 한다.

임신 기간 중에 임신부는 상가(喪家) 등의 궂은 곳을 가지 못하게 하며, 특히 산달에는 가족들까지 이 같은 금기를 지킨다. 그렇지만 산달이 아닌 경우에는 임신부를 제외한 가족들의 경우 상가 등의 출입을 특별히 금기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맞삼신이 든 집에는 안 간다는 말이 전한다. 이는 임신부가 있는 다른 집이나, 아이를 낳아 일곱이레가 지나지 않은 집을 말한다. 맞삼신이 든 경우 임신부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왕래를 하면 아이가 태어난 후에 젖이줄어든다 하여 서로 조심하는 것이다.

4) 난산(難産) 방지 및 대처, 안산법(安産法) 및 단산법(斷産法)

아이가 나오지 않고 임신부의 진통 시간이 길어지면 이를 ‘난산’이라고 하는데, 난산일 경우 임신부와 아이가 모두 죽기도 했다. 그러한 까닭에 난산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의 경우 병원에서 출산하기 때문에 난산법은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과거 집에서 출산을 할 때 행해졌던 난산법의 사례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도곡면 천암리 백암 마을 허화선의 말에 의하면, 난산일 때 임신부의 남편이 물을 떠다가 임신부의 입에 머금어 주면 쉽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백아면 송단리 송단 마을의 신옥란은 첫아이를 낳을 때 난산이었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진통을 겪다가 결국 인근의 산파를 데려다 아이를 낳았다. 거꾸로 든 아이를 산파가 임신부의 배 속에 손을 집어넣어서 빼낸 것이다. 난산이 되었던 까닭으로 산달에 신옥란이 살던 집 머리 쪽에 돼지 막을 새로 지은 일을 들었다. 비록 집 밖의 남의 땅에 지은 돼지 막이지만, 그것이 지어진 때가 신옥란의 산달이었고 자신의 집의 머리 쪽이었다는 점에서 아이가 나오는 구멍을 막은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청풍면 청용리 청용 마을의 김순임은 난산일 때 찬물로 머리를 감으면 아이를 빨리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2. 출산

1) 해산 준비

산달이 되면 임신부는 태어날 아이를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데, 음식으로는 산모가 먹을 미역과 쌀, 닭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이의 준비물로,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입는 옷인 배냇저고리와 기저귀, 포대기 등을 마련한다. 아이가 처음 입을 배냇저고리는 임신부가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기도 한다. 배냇저고리는 베로 만들고, 옷고름은 천으로 다는 대신 실로 만들어 붙인다. 실을 꼬아서 아이의 몸 전체를 감을 수 있도록 길게 만든다. 이는 아이의 명이 실처럼 길기를 바라는 마음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기성복으로 만들어진 배냇저고리를 사서 입히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산실(産室)을 정리하는데, 예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아이를 낳았기에 산실은 평소에 임신부가 기거하는 방이 된다. 전통적으로 산실의 아랫목에 짚을 깔고 아이를 낳았으나, 1960~1970년대에는 짚 대신 거름 포대나 종이 포대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산실에는 아이를 낳은 후 태를 자르기 위한 것으로 실과 가위를 미리 챙겨놓았다.

임신부가 아이를 낳을 때 이를 도와주는 사람을 ‘산파’라고 한다. 산파는 주로 시어머니가 되며, 동네에서 아이를 많이 받아본 여인이 맡기도 한다. 그러나 점차 보건소가 생기고,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서 산파도 자연히 없어지게 되었다.

2) 해산

아이를 출산하면 먼저 아이의 태(胎)를 자른다. 태를 자를 때는 우선 탯줄에 있는 피를 아이 쪽으로 훑어 준 후 아이와 산모 쪽의 태를 각각 실로 묶고 가운데를 자른다. 이때 아이의 배꼽에서부터 한 뼘이나, 한 뼘 반 정도의 탯줄을 남겨 둔다. 아이의 배꼽 쪽에 남은 태를 길게 잘라야 오줌을 자주 안 싼다고 한다. 잘라 낸 태는 아이를 낳을 때 깔아 두었던 짚에 싸 두었다가 사흘 만에 마당에서 불에 태운다. 잘라 낸 태를 땅에 묻기도 하는데, 이때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묻는다. 아이가 태어날 때 태를 목에 감고 나오기도 한다. 이를 보고 명줄을 감고 나온 것 이라고 하여 아이의 명이 길다고 한다. 그리고 중이 염주를 걸고 내려온 것으로 여겨 아이를 위해 절에 시주를 하면 좋다고도 한다. 아이가 태어날 때 얼굴에 보를 둘러쓰고 나오기도 하는데, 보를 쓰고 나온 아이는 겉이 미끌미끌하고 보에 막혀 울지 못한다. 이 보를 얼른 터 주어야 아이가 살 수 있으며, 단골이나 점쟁이에게 보를 만들어 주면 아이에게 좋다고 한다. 백아면 송단리 송단 마을의 신옥란의 경우, 큰딸이 태어날 때 엎드린 채 나왔는데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복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병원에서 출산하기 때문에 태의 처리는 아이를 받은 의사가 처리하거나 특별한 경우에는 남편이 자르기 때문에 전통적인 태의 처리 방법은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산모가 처음 먹는 음식을 ‘첫국밥’이라고 한다. 첫국밥으로는 미역국과 밥을 먹는다. 첫국밥을 산모가 먹기 전에 먼저 삼신상에 차려 두는데, 이때 삼신에게 산모의 젖을 많이 태워 달라는 기원의 말을 하곤 한다.

아이를 낳은 후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대문 앞에 금줄을 쳐 둔다. 금줄은 산모의 남편이나 그 밖의 식구들이 만들어 치는데, 왼새끼로 꼰 새끼줄에 태어난 아이의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것들을 꽂아 둔다. 남자 아이가 태어난 경우에는 고추와 숯, 종이 등을 꽂아 놓고, 여자 아이가 태어난 경우에는 솔잎과 숯, 종이 등을 꽂아 놓는다. 금줄을 쳐 두는 기간은 보통 세이레 혹은 일곱이레 동안이다. 아이의 성별에 따라 금줄을 쳐 두는 기간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아들일 경우에는 일곱이레, 딸일 경우에는 세이레 동안만 쳐 둔다. 이러한 금줄도 현재는 거의 치지 않으며, 간혹 손이 귀한 집에서 자손을 본 경우에는 치기도 하지만 보기는 드물다.

3. 산후(産後) 의례

산모가 이이를 낳은 직후 산실에 삼신상(産神床)을 차려놓는다. 삼신상을 차릴 때는 산실의 윗목에 짚을 깔아 놓고, 상 위에는 미역과 쌀, 물 한 그릇을 올려놓는다. 산모가 처음 먹는 음식인 첫국밥은 먼저 삼신상에 올린 후에 산모가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삼신상을 차려 놓는 기간은 각 집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세이레·다섯이레·일곱이레를 지낸다. 이레를 지내는 기간은 아들과 딸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삼신상을 차려 놓는 동안에는 매일 아침 깨끗한 물을 떠다 삼신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리고 매번의 이레가 돌아오면 삼신상에 떡을 함께 차려 놓기도 한다. 조그마한 시루에 백설기를 해서 시루 채 올려놓는 것이다. 이렇게 삼신상을 차리는 것은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삼신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화순읍 앵남리 앵무 마을 강옥순의 경우 아들딸 구별 없이 모두 세이레를 지내주었다. 세이레 동안 매일 아침 깨끗한 물을 떠다가 삼신상에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내는 이레를 ‘망둥 이레’라고 하며, 이때 삼신상에는 시루떡을 해서 올리기도 했다.

현재 삼신상을 과거처럼 관습적으로 차리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간혹 병원에서 출산을 하고서도 삼신상을 차리는 경우가 있는데,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시어머니가 집에서 삼신상을 차려놓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을 ‘백일’이라고 하여 아이를 위한 잔치를 해 준다. 백일을 지내는 것은 각 집안의 형편에 따라 다른데, 집안 형편이 넉넉할 경우에는 백일잔치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가족들끼리 백일떡만 나누어 먹는 경우도 있으며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히 잔치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백일이 되면 삼신상은 차려 두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째 되는 날인 ‘’에는 돌잔치를 한다. 돌잔치 역시 각 집안의 형편에 따라 가족들끼리만 조촐하게 하기도 하며, 친척이나 이웃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형편이 어렵더라도 삼신상은 반드시 차려 놓는다. 돌 음식의 하나로 돌떡을 만들어 친척이나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이때 돌떡을 받은 사람은 빈 그릇을 돌려주지 않고 쌀이나 돈 등을 담아서 돌려준다.

돌잔치를 하면서 아이의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돌잡이를 하곤 한다. 돌잡이를 위한 것으로 상 위에 실, 연필이나 공책, 가위 등을 차려 놓는다. 이때 아이가 실을 잡으면 명이 길 것이라고 하고, 연필이나 공책을 잡으면 공부를 잘 해 출세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위는 바느질을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아이를 위한 것으로 돌 옷을 새것으로 준비하기도 한다. 돌이 지난 후부터는 아이의 생일 때마다 삼신상을 차려 둔다. 현재 돌잔치는 집에서 행하기보다는 상업화된 장소를 빌려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도 돌잡이를 하는데,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해서 연필과 공책은 물론 컴퓨터의 마우스나 야구공과 같은 운동 용품 등을 올려놓기도 한다. 만약 마우스를 집으면 아이가 커서 IT 관련 일을 하고, 운동 용품을 집으면 훌륭한 운동선수가 된다고 여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화순 지역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출생 의례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임신 중 행해졌던 다양한 금기들이 없어졌고,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개는 병원에서 출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근래에는 산후 조리원까지 있어서 집안에서 가족들끼리 산후 의례를 행하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6 내용수정 북면-> 백아면
이용자 의견
윤** 2020년 1월 1일부터 북면에서 백아면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수정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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