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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부리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463
한자 爾陵夫里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문안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이릉부리군에서 능성군으로 개칭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의 지방 군현.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는 538년 사비 천도를 전후하여 담로제(檐魯制)를 대신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를 실시하였다. 백제 전역을 5방으로 나누는 한편 지금의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일원을 관할하기 위해 남방을 두었고, 그 밑에 14군(郡)과 44현(縣)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화순 지역에는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두부지현잉리아현이 설치되었다.

이릉부리군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죽수부리(竹樹夫里) 또는 인부리(仁夫里)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백제 시대 고분이 남아 있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일대가 중심지였고, 춘양면·이양면·청풍면·한천면·도곡면·도암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내용]

화순 지역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은 4세기 후반 근초고왕의 경략(經略) 이후였다. 백제는 마한의 토착 세력을 전면에 내세워 공물과 세금 등을 징수하는 공납 지배 혹은 간접 지배를 실시하였다.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직접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 중엽 방군성 제도를 실시한 이후였다. 그러나 방(方)은 광역의 군관구(軍官區)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민정(民政)의 중심은 군(郡)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방(方)에는 방령(方領), 군(郡)에는 군장(郡將), 성(城)에는 성주(城主) 혹은 도사(道使)가 파견되어 지방을 통치하였다.

백제는 중앙에서 모든 지방관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옛 마한의 토착 세력을 활용하여 조세 징수와 요역 징발 등을 위한 속리(屬吏)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속리(屬吏)는 현지의 토착 집단 수장층으로 백제의 지방 통치를 보좌하던 실력자였다. 이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도곡 농공 단지 조성으로 없어진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의 대곡리 고분군과 능주면관영리 고분군·천덕리 고분군·원지리 고분군, 청풍면의 신리 고분군 등을 들 수 있다.

이릉부리군은 다른 군(郡)과 달리 속현이 설치되지 않았다.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일대를 관할하였던 두부지현(豆夫只縣)은 전라남도 곡성 지역에 있었던 욕내군(欲乃郡)에 속하였고, 화순읍동면 일대를 관할하였던 잉리아현(仍利阿縣)은 전라남도 보성 지역에 있었던 파부리군(波夫里郡)에 속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교통 여건과 지형을 고려하면 잉리아현이 파부리군에 속하지 않고 이릉부리군의 관할 아래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변천]

이릉부리군은 신라가 백제를 통합한 후 757년(경덕왕 16) 때에 능성군(陵城郡)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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