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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리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91
한자 內坪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영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11월 14일 - 내평리 유적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 7차에 걸쳐 발굴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1년 4월 24일 - 내평리 유적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 7차에 걸쳐 발굴 종료
현 소재지 내평리 유적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 지도보기능주면 광사리 일원
출토 유물 소장처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지석로 1494[정남리 186-1]지도보기
성격 복합 유적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걸친 복합 유적.

[개설]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내평리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광사리 일원에 화순군에서 시행하는 생물 의약 단지 조성 사업에 포함되어 발굴 조사된 유적이다. 지표 조사는 2005년, 단지 내에 포함되는 8개 유적에 대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는 2008년에서 2011년까지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실시하였는데, 토지 보상 관계로 4년에 7차례 걸쳐 완료하였다.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삼국 시대, 고려시대, 조선 시대에 걸친 유적이 발견되었지만 청동기 시대와 삼국 시대의 유적이 대부분이다.

[위치]

내평리 유적내평리 일원과 광사리 일부 지역이 포함하고 있는 생물 의학 단지 내이다. 이곳은 내평리 남쪽 삼산이라 부르는 구릉과 북쪽 장골과 장곡 머들 일대이다. 유적은 곡간 지역과 구릉 상과 그 사면에서 확인되었으며, 발굴 당시 논밭이나 과수원, 선산 조성 등으로 일부 유적은 훼손된 상태였다. 현재는 생물 의학 단지가 조성되어 원래 유적의 위치는 확인하기 어렵다.

[형태]

유구는 청동기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청동기 시대는 집자리 8기, 수혈 9기, 움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그 양단에 중심 기둥 구멍이 있는 소위 송국리식이다. 내평리 유적에서 유일한 청동기 시대 후기의 움무덤 1기가 있다. 철기 시대 유적은 구상 유구가, 삼국 시대 유적은 집자리는 없고 모두 무덤 유적인데, 주구묘 18기, 분구묘 12기, 움무덤 12기, 독무덤 4기가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걸친 토기와 기와 가마 6기와 수혈 2기가 있다. 이외 고려 시대 석곽묘 1기와 움무덤 1기가, 조선 시대에는 회곽묘 4기만 발굴되었다.

내평리 유적의 삼국 시대 분묘는 토광묘 12기, 옹관묘 10기[타 분묘 배장 6기 포함], 주구묘 18기, 분구묘 12기가 발굴되었다. 토광묘는 구릉 남사면에서 중복되지 않고 12기 확인되었다. 형태는 장방형으로 길이 2~3m와 4~5m로 구분되며, 너비 1~1.5m가 대부분이나 2m 내외도 있고 깊이는 0.4m 이내이다. 내부의 충전토와 바닥의 흔적, 유물 부장 위치 등에서 목관이 안치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부장 유물은 호형 토기 1점이 많지만 5호는 호형 토기, 양이부호, 연질 토기, 철겸, 철도자가, 9호는 호형 토기와 대발이 공반되었다.

옹관묘는 주구묘와 분구묘에서 확인된 6기와 단독으로 조성된 4기 등 모두 10기가 조사되었으나 상부가 유실되고 바닥 부분만 남아 있다. 주구묘나 분구묘의 옹관묘는 주구에 인접하거나 중심부 외곽에 배치되어 발견되며, 단독 조성 옹관묘 중 2기는 토광묘 일부를 파괴하고 축조하여 토광묘보다는 후행한다고 하겠다. 옹관묘의 조합 양상은 합구식 2기, 단옹식 5기, 3옹식 1기이다. 부장 유물은 광구평저호, 발형 토기, 호형 토기, 원저소호 등으로 토광묘에 비해 빈약하다.

주구묘는 모두 18기가 조사되었는데, 평면 형태가 남아있는 12기 중 말발굽형(馬蹄形) 11기, 타원형 1기이다. 구릉 정상부와 그 사면에서 등고선과 평행하며, 크게 2개 군집으로 서로 연접된 경우가 없이 단독으로 조성되었다. 대상부의 규모는 길이 20m, 너비 8m, 깊이 0.4m 이하이며, 매장 주체부는 토광묘만 확인된다. 부장 유물은 양이부호만 있다.

분구묘는 1구역에서 11기, 2구영에서 1기 등 모두 12기이다. 평면은 대부분 제형이며, 원형은 3기이다. 제형분은 분구가 없이 주구만 남아 있고, 원형 분은 분구와 주구가 남아있다. 제형분은 길이 11m 내외의 소형과 30~50m의 대형으로 나뉘어지며, 너비는 8~12m 내외이다. 매장 시설은 토광묘와 옹관묘가 확인되는데, 토광묘가 중심이며, 옹관묘는 한쪽에 치우쳐 있어 추가장의 성격을 띤다. 부장 유물은 토광묘에서 호형토기가 많지만 평저소호, 발형 토기, 양이부호, 소옥, 철제편, 철겸, 철모 등이 있으며, 옹관묘에서는 대옹, 발형, 광구평저호, 원저소호, 철겸 등이다. 6호 분구묘 3호 토광묘 옥 427점이 일괄로 출토되었다.

원형분은 구릉 정상부에 단독으로 입지하고 있고, 직경 10~18m, 높이 1~2m의 분구 주위에 주구가 돌려져 있다. 매장 시설은 상부가 유실되어 바닥만 남아있는데 석실과 석곽이다. 특히 10호는 분구 전면에 돌을 깐 즙석분이다. 즙석분은 전라남도 함평군 신덕고분,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용일리 용운 고분,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창리 용두리 고분, 화순군 능주면 백암리천덕리 고분에서도 확인되고 있고, 전방후원형 고분과 그 주변의 원통형 토기가 수습되어 그와 관련성도 있다고 하겠다. 유물은 10호에서는 기대, 개배, 꼭지달린 개, 고배, 11호 개배 3세트, 곡옥 1점. 관옥 2점, 소옥 34점, 철모 등이 있다.

[현황]

청동기 시대 유물은 집자리에서 옹형 토기와 호형 토기, 돌화살촉, 갈판과 갈돌, 돌끌, 삼각 돌칼 등이 발견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 유물은 움무덤에서는 덧띠 토기와 목긴 흑색 마연 토기가, 구상 유구에서는 굽다리 토기 편이 있다. 삼국 시대 유물로 분묘 유적에서는 바리형 토기, 항아리형 토기, 뚜껑 접시, 뒤귀 토기, 입큰 토기 등 토기류와 철창과 철낫 등 철기 외에 장신구인 옥이 출토되었다. 고려 시대 움무덤에서는 청자 바리와 청자 대접, 청동 수저가 부장품으로 발견되었다.

내평리 유적은 발굴 후 학술적인 조사 기록으로 남기고, 생물 의학 단지 조성으로 지형이 삭토되어 남아있지 않다. 여기서 출토된 중요 유물은 매장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국가 귀속되어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내평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는 각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생활 유적인 집자리 등 청동기 시대와 다양한 분묘의 삼국 시대 유적이 대부분이다. 삼국 시대 분묘 유적은 주구묘에서 분구묘로의 변화 과정이 확인되고 있어 화순 지역 분묘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평리 분묘의 연대는 전체적으로 3~5세기가 중심인데, 토광묘는 4세기 대, 옹관묘는 3세기 후엽부터 4세기 대, 주구묘는 4세기 이전인 3세기 대에 시작하며, 제형분은 3세기 후반 4세기가 중심이고, 원형분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까지로 편년되고 있다. 하지만 분구있는 고분은 백암리 고분으로 보아 6세기 전반으로 보기도 한다.

이 유적에서 목탄을 이용한 방사성 탄소 연대가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기원전 800년 대로 영산강 유역에서 빠른 시기에 해당되며, 삼국 시대는 기원후 500~600년 대에 집중되어 있으나 분묘의 형태와 그 내부에서 출토되는 토기들을 볼 때 분묘 유적은 3~6세기대의 유구로 여겨진다. 토기 가마는 절대 연대로 보아 7세기를 중심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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