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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666
한자 和順千德里懷德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687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영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9월 27일연표보기 - 화순 천덕리 회덕 고분군 전라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
소재지 화순 천덕리 회덕 고분군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687 지도보기
성격 고분
크기(높이,지름) 2.5~3m[1호분 높이]|25m[1호분 길이]|18m[1호분 잔존 너비]|3.5m[2호분 높이]|30m[2호분 길이]|22m[2호분 잔존 너비]|5m[3호분 높이]|21m[3호분 너비]|24m[4호분 너비]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192호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회덕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개설]

화순 천덕리 회덕 고분군은 마을 입구 구릉 상에 3기와 여기서 약 400m 떨어진 주자묘 옆 야산 정상부에 1기 등 4기가 분포하고 있다. 천덕리 고분·관영리 고분·원지리 원지 고분이 1km 범위 내에 분포하고 있다.

[위치]

화순군 능주면에서 지방도 839호선을 타고 천덕리로 가는 진입로를 따라가다 보면 회덕 마을이 나온다. 마을과 지방도 사이에는 경전선이 지나가고 있다. 고분은 회덕 마을 입구 왼쪽[북쪽]의 나즈막한 구릉 상에 3기가 위치하고 있다. 행정 구역 상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687번지 일원이다. 고분의 입지는 마을의 동쪽에 있는 민재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높이 75m 정도까지는 급경사로 내려오다가 점차 완만해져 높이 60m 정도에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다시 약간 높아진 구릉이 완만하게 서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고분은 이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는데 능선을 따라 일렬로 분포하고 있다.

[형태]

화순 천덕리 회덕 고분군회덕 마을 초입의 정자가 있는 구릉의 능선을 따라 남서·북동 방향으로 3기가 분포하고 있다. 1호분은 가장 서남쪽에 있는 고분으로 구릉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마을 입구 정자와 인접하고 있는데, 주변이 휴게 시설로 정비되어 있다. 휴게 시설을 만들면서 분구 끝자락이 훼손되었고, 분구 북서면이 상당 부분 깎여 나가 3~4m의 단애를 이루고 있다. 또한 봉분 정상부에도 시멘트 계단을 비롯한 13×12m 정도의 평탄부가 형성되어 있어 육안으로 분형을 파악하기 힘든 상태이다. 측량 조사 결과 평면 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25m, 남은 너비 18m, 높이 2.5~3m 내외로 확인되었다. 분구는 원래 길이와 너비가 25m 내외의 크기인 방대형(方臺形)으로 추정된다.

2호분은 1호분과 3호분 사이에 있는 고분으로 분구의 북동쪽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민묘가 조성되면서 약간 훼손되거나 민가 조성으로 상당 부분이 깎여나간 상태이다. 분구의 북서쪽과 북동쪽 사면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고 북동쪽 사면 끝자락에는 주구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분구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북동·남서 길이 30m, 북서·남동 남은 길이 22m, 높이 3.5m 내외인데 원래는 30×30m 정도의 크기인 방대형으로 추정된다.

3호분은 구릉의 가장 위쪽인 북동쪽에 있는 고분으로 천덕리 137번지 민가 옆에 위치하고 있다. 분구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민가가 들어서 있는 분구의 남동쪽은 상당 부분 깎여나갔다. 분구의 평면 형태는 원형인데 주구의 흔적과 봉분에 돌을 깐 즙석이 일부 확인된다. 규모는 직경 21m, 높이 5m 내외이며, 봉분 정상부에는 너비 7m 정도의 평탄부가 형성되어 있다.

이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있는 4호분은 규모가 너비 24m 내외인 평면 원형 고분으로 봉분 정상부에 커다란 함몰부가 있지만 분구는 잘 남아 있다.

[현황]

화순 천덕리 고분은 아직 정식 학술 조사가 되지 않아 관련 유물은 확인되지 않지만 삼국 시대 토기 등 유물이 수습되기도 한다. 주자묘 근처 고분에서 1977년 보고 시에는 분청사기와 백자편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입구에 마을에서 정자와 쉼터를 조성하면서 고분 일부가 삭토되거나 훼손되었고, 나머지들도 민묘가 들어서거나 민가와 인접되어 봉분의 일부가 깎여 나간 곳도 있다. 고분 위에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고, 정상부의 함몰부는 도굴갱으로 추정된다. 더 이상 훼손되지 않는 대책 마련과 함께 정비 복원 차원에서 조사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천덕리 회덕 고분은 화순 지역에서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고분군이다. 지금까지 화순에서 발견된 고총 고분은 구릉 상이나 구릉 말단부, 평지에서 1기씩만 확인되고 있는 점에서 3기가 군집한 회덕 고분은 이 지역 고분 연구에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고분들은 한 면이 20~30m에 이르고 높이도 3~5m로 규모가 상당히 큰 고분군이다. 그리고 발굴은 되지 않았지만 주위에 주구의 흔적이나 봉토의 즙석 흔적 등은 이 고분의 성격을 암시한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주구묘가 유행하고, 고총 고분의 주위에 주구가 돌려진 양상과 같은 면을 보이지만 즙석의 흔적은 화순읍 내평리 고분이나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신덕 장고분[전방후원분]처럼 일부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영산강 유역의 고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양상으로 보았을 때 영산강 유역 고분의 전통을 가지면서 외부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화순 천덕리 회덕 고분군과 지석천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능주 지역은 마한 시기의 여래 비리국(如來卑離國) 또는 내비리국(內卑離國)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백제 시대에는 이능부리군(爾陵夫里郡)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산강의 상류인 지석천은 남쪽의 전라남도 장흥군이나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내륙 지역인 전라남도 나주시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양 지역의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를 통해 능주 지역이 고대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며, 이는 고고학적 유적인 고분이 산재되어 분포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화순 천덕리 회덕 고분군은 백제 시대에 조성된 이 지역 유력자의 무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