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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595
한자 和順大谷里遺蹟
이칭/별칭 대곡리유적,화순 대곡리 적석 목관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중한실길 65-2 [대곡리 312]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조진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71년 12월 24일연표보기 - 화순 대곡리 유적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긴급 수습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3월 2일 - 화순 대곡리 유적 출토 청동기 국보 제143호로 지정
출토|발굴 시기/일시 2008년 2월연표보기 - 화순 대곡리 유적 국립 광주 박물관에서 재발굴
현 소장처 국립 광주 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430]
원 소장처 국립 중앙 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출토|발견지 화순 대곡리 유적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312 지도보기
성격 분묘 유적
양식 적석 목관묘
크기(높이,길이,둘레) 330㎝[1단 토광 길이]|280㎝[1단 토광 너비]|85㎝[1단 토광 깊이]|233㎝[2단 토광 길이]|98㎝[2단 토광 너비]|70㎝[2단 토광 깊이]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제143호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무덤 유적.

[위치]

대곡리 유적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312에 위치한다. 화순군 능주면 소재지에서 도곡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822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면 내대곡[안한실]과 중대곡[중한실] 마을이 나온다. 유적은 도로의 북쪽에 위치한 중대곡 마을의 뒤편 구릉에서 발굴·조사되었다. 대곡리 적석 목관묘는 구릉 능선에서 서쪽 사면으로 약간 내려온 지점에 위치하는데, 구재천 가옥의 헛간 바로 옆에 해당한다.

대곡리 유적 주변에는 지석묘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남서쪽으로 3㎞ 정도 떨어져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순 효산리 및 대곡리 지석묘군이 위치한다. 북동쪽으로 4㎞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화순 백암리 적석 목관묘가 발굴·조사되었다. 유적의 북쪽으로는 지석천과 그 좌우에 형성된 넓은 충적 평지가 펼쳐져 있다.

[형태]

1971년 수습 조사와 2008년 재발굴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무덤은 통나무관을 사용한 적석 목관묘로 판단된다. 무덤은 구릉 능선의 서쪽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동북동-서남서이다. 묘광은 2단으로 굴광하였다. 1단부의 규모는 길이 330㎝, 너비 280㎝이다. 깊이는 곳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깊게 남아있는 동벽은 85㎝ 정도이다. 2단부는 1단부 중앙에 길이 233㎝, 너비 98㎝, 깊이 70㎝로 파졌으며 그 안에 통나무 관을 안치하였다.

1971년 수습 조사에서는 길이 86㎝, 너비 40㎝, 두께 10㎝ 정도의 목판이 동서로 놓인 채 노출되었고, 2008년 조사에서는 길이 115㎝, 너비 40㎝ 정도에서 목관 흔적이 바닥에서 확인되었다. 그리고 목관 좌우에서는 목관을 고정시킨 돌이 확인되었다. 토광 1단부에는 20~50㎝ 크기의 돌들이 채워졌는데, 헛간 때문에 파괴되지 않는 남쪽에서 잘 확인된다.

통나무 관의 크기는 토광 2단부의 규모와 창원 다호리 1호 목관묘의 통나무 관으로 미루어 추정해 볼 수 있다. 2단부는 길이가 233㎝에 불과하므로 대곡리 통나무 관은 길이 240㎝인 다호리 목관보다 약간 작았을 것이다. 너비는 다호리 1호 통나무 관과 비슷한 60~70㎝로 추정되는데, 이 경우 통나무 관의 상면이 토광 2단부의 상면과 엇비슷해진다.

그리고 토광 1단부에는 전면에 걸쳐 적석을 하였을 것이다. 1971년 수습 조사 당시 사진에 토광 1단부의 북쪽에서도 적석이 확인되고 있으며, 무덤에서 제거된 돌의 양이 상당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피장자의 두향은 인골이 출토되지 않아 확실하지 않지만 지형이 동고서저이고, 2008년에 출토된 세형동검의 봉부가 서쪽을 향하고 있어 동쪽으로 추정된다.

[현황]

1971년 8월 헛간 배수로 작업을 하던 구재천 씨가 청동 유물 11점을 수습하였다. 마침 마을을 돌아다니던 엿장수에게 넘겼지만 다행히 엿장수가 전라남도 문화 공보실에 신고하였다. 1971년 12월 20일 전라남도 문화 공보실을 방문한 조유전이 이 사실을 확인하고, 당시 국립 중앙 박물관 수석 학예관이던 윤무병과 함께 동년 12월 24일에 유구 확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출토 유물은 1972년 3월 2일 국보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04년 12월부터 2005년 3월에는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대곡리 유적과 주변 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 및 GPR 탐사를 실시하였다. GPR 탐사 결과를 토대로 2007년에는 국립 광주 박물관에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2008년 2월 13일부터 2월 22일까지 적석 목관묘를 재발굴 조사하여 세형동검 2점을 추가로 수습하였다.

1971년에 세형동검 3점, 동부 1점, 동사 1점, 다뉴세문경 2점, 팔주령 2점, 쌍두령 2점이 수습되었고, 2008년 재발굴 조사에서 세형동검 2점이 출토되어 모두 13점의 청동 유물이 확인되었다.

2008년에 출토된 세형동검 2점은 토층상 통나무 관 아래쪽에서 출토되어 토광과 통나무 관 사이에 부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유물은 모두 구재천이 수습하였기 때문에 부장 위치가 확실하지 않다. 다만 구재천의 기억에 따르면, 세형동검 3점 가운데 2점은 피장자의 왼쪽 허리쯤에, 1점은 오른쪽 허리쯤에 있었으며, 팔주령 2점과 쌍두령 2점은 피장자의 머리 위쪽에, 다뉴세문경 2점은 피장자의 머리 부근에, 동부와 동사는 피장자의 다리 쪽에 부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의 조영 시기는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유적이 발굴된 구재천 가옥은 현재 빈집으로 남아 있고, 청동 유물 수습의 계기가 되었던 헛간은 2008년 발굴조사 때 헐어냈다. 발굴 조사 후 원상태로 복구하였으며 바로 옆에는 유적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971년에 수습된 청동 유물은 국립 중앙 박물관의 소장 유물로, 2008년 발굴된 세형동검 2점은 국립 광주 박물관의 소장 유물로 등록되어 있다. 지금은 모두 국립 광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를 대표하는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적석 목관묘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졌으며 다뉴세문경과 팔주령 등의 청동 유물은 당시 청동기 제작 기술의 우수성을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인돌 화순 고인돌 축제와 관련된 내용이 추가되었으면 합니다.
  • 답변
  • 디지털화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항목은 대곡리의 청동기 및 초기 철기 시대 유적에 대해 소개한 항목입니다. 화순고인돌축제는 화순고인돌유적지(도곡면 효산리 춘양면 대신리 지역)를 중심으로 열리는 축제로 본 항목과는 관련성이 떨어집니다. 이에 본 항목에 말씀하신 내용 추가가 어렵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의견 개진에 감사드립니다.
201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