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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711
한자 和順綾州三忠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산 33-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32년 - 최경회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51년 - 문홍헌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3년 - 최경회 사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3년 - 문홍헌 사망
건립 시기/일시 1685년연표보기 - 화순 능주 삼충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2월 25일연표보기 - 화순 능주 삼충각 전라남도 기념물 제77호로 지정
현 소재지 삼충각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산 33-1 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익공식
관련 인물 최경회|문홍헌|조현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77호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려각.

[개설]

화순 능주 삼충각(三忠閣)은 능주 지역에서 출생한 최경회(崔慶會)·문홍헌(文弘獻)·조현(曺顯) 등 충신 3인의 충공을 기념하기 위해 1685년(숙종 11)에 능주 향교 유림들이 세운 정려각(旌閭閣)이다. 정려란 본래 충신, 효자, 열녀들이 살던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말하는데 오늘날은 대개 본 삼충각과 같이 각(閣)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경회[1532~1593]는 1532년(중종 27) 능주에서 출생한 조선의 문신으로 1561년(명종 16) 진사가 되었고, 1567년(선조 1) 문과에 급제하였다. 영해 군수 등을 지낸 뒤에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 전라좌도 의병장이 되어 금산·무주·창원·성주 등지에서 왜병을 격퇴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여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참가, 창의사 김천일(金千鎰)과 합세하여 9일 밤낮을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투신자살하였다. 때는 1593년(선조 26)이었다.

문홍헌[1551~1593]은 1551년(명종 6) 능주에서 출생한 조선의 의사(義士)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었고, 임진왜란고경명과 함께 금산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후 진주성에서 최경회와 합류, 왜병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와 함께 남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조현[?~1555]은 화순군 춘양에서 출생한 조선의 무신으로 1555년(명종 10) 을묘왜란 때 가리포 첨절제사로서 영암에 침입한 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병조 참의에 추증되고 능주의 포충사(褒忠祠)에 제향되었다.

[건립 경위]

정려는 특히 조선 시대 유교적 윤리관에 의해 전국적으로 많이 건립됐고 특히 임진왜란 무렵에 충신들이 많이 정려를 받았다. 본 삼충각은 지역 유림이 주체가 되어 건립하였다.

[위치]

화순 능주 삼충각능주면 잠정리 지석강 상류 천변의 높은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화순 능주 삼충각은 3개의 동(棟)으로 건립되어 있다. 3명을 동시에 봉안할 때는 흔히 3칸 규모 1개 동에 함께 하는데, 삼충각은 별도로 각각 봉안하고 있어 다른 정려각과 크게 구별된다.

3개의 동은 모두 거의 비슷한 구조인데,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비(碑)가 없이 정려 현판만 걸려 있다. 건물 4면에는 모두 홍살이 꽂혀 있다. 홍살은 보통 경배와 함께 성스러움을 뜻하는 상징적인 장식 부재이다.

구조는 막돌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을 걸은 3량가이며 공포는 중앙의 정각만 초익공식(初翼工式)으로 하였고 나머지는 2익공식으로 꾸몄다. 3동 모두 처마 높이가 120~160m 정도로 매우 낮고 건물 또한 간결하다.

[변천]

삼충각은 1685년 건립 이후 위치나 형태 등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삼충각은 건립 이후 지속적인 관리로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1985년 2월 25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충각은 건립 연도도 비교적 오래 됐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특히 3인 각각의 독립된 건물을 보유한 것도 다른 정려각과 구별이 된다. 삼충각에 봉안된 3인의 충신 행적도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