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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742
한자 和順雙峯寺澈鑒禪師塔碑
이칭/별칭 철감 선사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95-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798년 - 철감 선사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868년 - 철감 선사 사망
건립 시기/일시 868년경연표보기 -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비 보물 제170호로 지정
현 소재지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비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95-1 지도보기
성격 탑비
양식 귀부|이수[비신 유실]
관련 인물 철감 선사 도윤
재질 석재
크기(높이,너비,두께) 230㎝[전체 높이]|140㎝[귀부 높이]|145㎝[귀부 전면 너비]|144㎝[이수 너비]
소유자 쌍봉사
관리자 쌍봉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70호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탑비.

[개설]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비는 통일 신라 시대 능성[현 화순] 쌍봉사에 세운 철감 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798~868]의 탑비이다. 철감 선사가 입적하자 경문왕은 시호를 ‘철감’이라 내리고 승탑과 탑비를 세웠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龜趺]과 머릿돌[이수]만 남아 있다. 네모난 바닥 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특히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다. 머릿돌은 용 조각을 생략한 채 구름무늬만으로 채우고 있다. 앞면 가운데에 제액을 만들고 비제를 음각 예서체로 새겼다.

[건립 경위]

철감 선사 도윤은 통일 신라 시대의 승려로, 스물여덟 살 때인 825년(신라 헌덕왕 17) 중국 당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847년(신라 문성왕 9)에 범일 국사(梵日國師)와 함께 돌아와 풍악산[금강산]에 주석하였다.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기도 하였고 그의 문하에서 선문구산의 하나인 사자산파(獅子山派)[영월]를 이룩한 절중 선사(折中禪師)[826~900]가 배출되었다. 경문왕 대에 당시 능성군 지역에 절을 지어 쌍봉사라 하였다 한다. 868년 일흔한 살의 나이로 쌍봉사에서 입적하니, 경문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와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입적한 해인 868년 무렵 탑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위치]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비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화순군청 소재지에서 30㎞ 거리에 있는데, 국도 29호선을 따라 화보로, 개기로를 지나 능주 이양 방면으로 가다가 이양면 매정리 매정교차로에서 쌍산의로 길을 따라 4.5㎞ 거리에 있는 쌍봉사 경내 서쪽에서 북측으로 난 야트막한 구릉지를 따라 50m 올라가면 탑비가 있다. 옆에는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국보 제57호]이 있다.

[형태]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비는 전체 높이 230㎝, 귀부 높이 140㎝, 귀부 전면 너비 145㎝, 이수 너비 144㎝이다.

거북받침좌대는 방형(方形)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용두화(龍頭化)한 머리를 똑바로 하고 있으며,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다. 이수의 운룡(雲龍)도 사실적이다. 금석문이 기록된 비몸돌은 유실되었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귀부의 네 발은 발가락이 3개씩인데 오른쪽 앞발만 발가락을 위로 들고 있어 생동감을 주고 있다. 머리 위에는 뿔이 하나 있으며 입가에는 날개 같은 것이 있다. 목 가운데에는 복갑(腹甲) 형식의 중첩된 문양이 정연하다. 등은 중곽육각귀갑문(重廓六角龜甲紋)이 선명하다. 귀갑의 바깥 선에는 귀갑문이 반으로 잘린 듯 옆으로 선명하게 돌려져 있다. 등 가운데에는 장방형의 비좌를 만들고 비좌 4면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그 위로 1단의 받침대를 갖추고 32판의 연판문을 돌리고 그 윗면에 3단의 각과 굄을 조각하였다.

이수는 비몸돌을 덮고 있는 밑면을 제외한 5면에 운룡문을 가득히 조각하였다. 앞면에는 3마리의 용이 좌우와 가운데 윗단에서 꿈틀거리고 있으며, 뒷면에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몸을 뒤틀면서 허공을 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수의 정상부에는 보주형 귀꽃 3개가 솟아 있었으나 오른쪽 것은 4각형의 구멍만 뚫려 있고 귀꽃은 유실되었다. 남아 있는 2개의 귀꽃이 원석에 그대로 조각한 것임에 비해 이는 따로 만들어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보존 처리를 하면서 복원품을 조각하여 얹었다.

머릿돌 앞면 가운데에 위패형의 액(額)을 만들고 그 안에 내려쓰기 2행으로 ‘쌍봉산 고 철감 선사 비명(雙峯山故澈鑒禪師碑銘)’이라는 비제를 예서체 음각으로 새겼다.

비몸돌의 행방에 대해서는 1786년에 세워진 쌍봉사 사적비에 ‘철감 선사의 이름마저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한 점과 ‘절의 동서 양쪽에 비석이 있는데 서쪽의 것은 신라 때의 것이고 동쪽의 것은 고려 때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고 하였는데 서쪽의 것이 철감 선사의 비가 아닌가 추정된다. 마을에 전해지는 구전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탑비 부근의 땅 속에 이 비를 묻었을 것이라고 한다.

[금석문]

비몸돌은 유실되었고, 머릿돌의 앞면 가운데에 제액을 만들어 ‘쌍봉산 고 철감 선사 비명(雙峯山故澈鑒禪師碑銘)’이라고 예서체로 음각하였다.

[현황]

쌍봉사 철감 선사 탑비는 비몸이 없는 상태로 비받침인 귀부와 비머리인 이수만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70호로 지정하였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감시 장치(CCTV)를 설치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별다른 보호각은 없다. 관리 주체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송광사 소속 쌍봉사에서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철감 선사 탑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지만, 전체적인 조각 수법이 뛰어나 통일 신라 시대 석조 미술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 불교 미술사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